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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고속도로와 청계천

입력
2000.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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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출근길에 택시를 탔다가 강남 매봉 터널에 한참 갇힌 적이 있다. 옴짝달싹 못하는 긴 자동차 행렬을 바라보니 경기도 번호판을 단 차가 절반은 되었다. 분당 신도시가 생기고 길이 뚫리면서 나타난 양재동 주변 러시아워 풍경이다.공사중인 75층짜리 도곡동 삼성 타워팰리스가 완공되면 이 일대 지상 교통은 아마 생지옥을 이룰 것이다. 아찔한 일이다. 비교적 도시계획이 잘되었다는 강남 한 귀퉁이가 이 모양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행정구역 안에 주소를 둔 인구만 헤아려 서울 인구 1,000 만 명이라고 우기는 것은 무의미하다. 100만 명, 50만 명 규모의 도시들이 서울을 포도송이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서울은 2,000 만 명의 거대 도시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수도권 비대화 과밀화는 국가적 고민거리다. 수도권 지역이 겪는 수많은 도시문제도 큰 골치거리이지만, 지방은 날이 갈수록 속이 비어가고 있다.

마치 다리는 가늘고 상체만 뚱뚱한 비만증 환자의 모양이다. 그런데 역대 정부와 지도자는 말로만 서울의 비대화를 고민했지 행동으로 이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김 대중 대통령은 수도권 비대화를 걱정하는 말을 했지만 그의 부하인 건교부 장관은 바로 서울의 코 앞인 판교 등 수도권 지역에 80만 신도시 건설계획을 엉거주춤 내놨다가 여론이 빗발치자 거두어 들였다.

그러나 수도권 신도시 건설계획은 일단 잠복했을 뿐 머지 않아 다른 모습으로 나올 것이란 예감이 든다. 우리의 건설행정이란 것이 자전거 페달을 밟듯이 새로운 공사를 끊임없이 만들어서 건설경기를 돌아가게 하는데 30년 동안 익숙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 건설업계를 어떻게 살릴까를 생각하기에 앞서 우리나라의 도시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에 골몰하는 정부가 필요하다. 서울의 비대화를 부르는 신도시가 아니라, 수도권 인구분산을 촉진할 수 있는 미래형 신도시를 디자인하는 일에 건교부가 나서보면 어떨까.

논바닥에 고층아파트만 난립한 난 개발형 도시가 아니라 인구유입의 중요한 기능인 기업체와 대학을 정책적으로 유치하여 첨단도시를 시범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도시는 정부서비스를 위해 서울나들이가 필요 없고 서울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터미널에 북적이는 곳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잠꼬대 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앞으로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환경적으로 쾌적하고, 좋은 일자리가 가까이 있고,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통일과 남북관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삶의 질이다. 21세기에도 도시화는 진척될 것이다.

그런데 미래를 내다보면서 도시를 잘 설계하지 않고 어떻게 삶의 질을 추구할 수 있을까. 잘 산다는 선진국 도시들이 서울처럼 무절제한 곳이 어디 있는가. 지방이 퇴락하고 서울만 융성하는 선진국도 찾아보기 어렵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룬 일 중에 경부고속도로와 청계천 복개공사가 있다. 당시 낭비적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던 경부고속도로는 30년 후 가장 유효한 시설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서울시내 한복판을 흐르는 청계천 복개 공사는 새로운 도로와 함께 불결한 도시공간을 없애주는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지금 청계천이 복개되어 있지 않다면 아마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도시의 오아시스로 변했을 것이다.

정부 지도자들이 우리 도시의 미래를 구상할 때 떠 올려볼 만한 에피소드가 아닌가 생각한다.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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