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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가 만난사람] 삶의 희망을 말하는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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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가 만난사람] 삶의 희망을 말하는 작가 김주영

입력
2000.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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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미래가 없는 것처럼만 생각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오늘 내일 당장 나라가 끝장나지 않을 터인데, 밝게 생각하면서 미래를 준비할 방법은 없을까?"지금의 위기의식이나 절망감은 현재의 경제위기가 끝나도 호황기로 접어들 전망이나 비전이 보이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누구도 맥을 짚어볼 수 없는 실정에서 경제위기가 개인들에게 심정적 공황을 가져왔다. 그러나 마음 먹기에 따라 국가적 경제위기와 개인의 삶을 분리시킬 수가 있다. 또 그래야만 한다."

소설가 김주영(61)을 만나 주고 받은 첫 머리다. 일생을 소설을 써온 사람과 나눌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문학적 인터뷰에만 익숙한 그였지만 이런 말을 나누고자 하는 기자의 요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낙관적'인 글을 써온 사람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아라리난장'까지 그의 소설에는 어떻게든(간혹은 무리하게라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 많다.

"국가적 위기-개인의 삶 분리해야 미래 보인다"

그 역시 '낙관적인 사람'이라고 불리는데 거부감을 갖지 않아온 사람이다. 그를 만난 건 그의 낙관적 삶을 전하면서 우리 모두를 짓누르고 있는 절망감에서 벗어나자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소설만을 써온 그의 몇 마디 말이 당장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역시 '가치관의 재정립''민족의 저력'등 그 동안 많이 들어온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갈 수밖에 없는 듯 했다.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절망'보다 나은 법, 지금은 그런 말이라도 새삼 필요한 즈음이다.

_국가적 경제위기는 개인의 심리적 공황으로 이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걸 어떻게 분리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나만해도 넥타이를 하나 새로 사려다가 경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데 한 푼이라도 아껴야지 하는 생각에서 그만뒀다. 이런 생각이 만연된 건 사실 아닌가. 어떻게 개인이 지금의 경제위기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는 말인가.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경제위기와 개인의 삶 두 가지를 분리시킬 수 있다. 문제를 낙관적으로 보자는 말이다. 앞으로 아무리 어려워져도 몇 십년 전 곤궁했던 것보다는 나은 삶일 것이다. 예전에 가난을 겪었을 때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긴 했지만 호황 불황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버는 만큼 쓰고 남는 만큼 저축해왔다. 하루 두 끼만 먹어도 잘 먹은 날이었고, 여러 번을 냉수로 배를 채워야 했던 어릴 때를 생각하면 지금 나는 너무 잘 살고 있다.

집이 있고, 차가 있다. 점심 때는 비록 몇 천원짜리지만 무엇을 먹을 건가 선택에 고민해야 한다. 얼마 안되지만 나보다 형편이 못한 장애인들도 돕고 있다. 이건 내 자랑이 아니다. 분수대로 살아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불황에 떨지 않는다."

(이쯤에서 그와 기자와의 관계를 털어 놓아야겠다. 그의 고향인 경북 청송과 기자의 고향인 안동은 인접해있다. 그가 20대 후반, 안동에서 가난하게 직장생활을 할 때 안동에서 하나 뿐인 빵집 아들로 중학생이었던 기자는 '문학청년'이었던 그를 먼 발치에서 몇 번 본 일이 있다.

"형편 아무리 어려워져도 몇십년 전보다 훨씬 낫다"

30여년 만에 대면한 자리에서 그 당시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파안(破顔)을 하면서 그 때 안동에서 매일이라도 가보고 싶었던 곳이 두 곳이 있었다며 하나는 '스쿨서점'이라는 안동서 제일 컸던 서점이었고, 하나는 기자의 집에서 하던 빵집이었다고 말했다. 이 걸로 그의 곤궁했던 시절이 독자에게 충분히 전해졌으면 좋겠다.)

_선생의 말씀은 결국 '분수껏 살아라''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라' 나아가 '위보다는 아래를 돌아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런 이야기는 다 알려진 것 아닌가. 그런 논리로 지금 이 사회에 만연한 불안감을 씻어 낼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가난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가난한 시대를 생각하며 지금 어려움을 겪어나가자고 할 수 있을까.

"다른 대안이 있는가? 문제는 현실적 바탕에서 해결해야 한다.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젊은이들의 욕구를 채워줄 자원이 우리에게 있는가? '잘 살아야 한다'는 문제를 오직 돈과만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너무 깊이 빠져있어 어렵겠지만 지금의 서구적 물량주의에서 빨리 빠져 나와야만 한다."(이 말을 하면서 그는 자신이 직접 돌아본 아프리카 마사이족의 '소똥집'이야기를 했다.

"온통 소똥을 바른 집에서 살고 있는 마사이족의 집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이 미개한 탓'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그들의 문화다.

소똥 냄새는 해충과 맹수의 접근을 막아준다. 그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소똥집에 사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우리 문화에 바탕한 삶을 살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청빈' '검약' '검소' '분수'같은 개념을 새로 진단하고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_그게 말처럼 쉽다면 왜 안되겠는가.

"우리가 물량주의에 빠지게 된 것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비전, 자기 삶에 대한 긍정적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이들이 문제를 자신의 창의력이나 활력, 기백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국가나 경제 현실이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다. 자본주의시대에 살면서 사회주의적 해결을 바라는 것 같다. 자신을 바라보라. 자기자신에 의존해라. 그러면 열린다."

이어서 그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이야기하면서 "맞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 더 강한 걸 아느냐"고 물었다. "권투에서도 그런 장면을 몇 번 보았고, 어릴 때 골목대장들 싸움에서 보았는데, 맞는데 이력이 난 사람이 더 강하더라. 때리는 쪽이 나중에 당황하고 위축되더라.

이골이 나면 아프지도 않다고 하더라. 내부에 힘이 생기기도 한다."묘한 논리이지만 침략만 당해온 우리 역사는 그만큼 우리에게 저력을 심어주었으며 그걸로 볼 때 지금의 어려움이 민족의 앞날을 완전히 망쳐놓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_안 맞고 강해지는 것이 좋지 않은가. 맞고 강해지는 건 슬프지 않은가.

"슬프지만 강하다고 말하자. 우리는 벼랑에 밀릴 때마다 새로운 활로를 찾아왔다.

벼랑에 밀린 탓에 슬퍼했지만 이내 새 길을 찾아내왔다. 비록 역사의 발전이 느릴지는 몰라도 바탕 없이 빨리 발전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않은가."

그는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산골에서 자라나 소풍날에도 감자를 갖고 가서 먹었다.

쌀밥은 커녕 보리밥도 없어 옥수수 고구마로 대신했다. 생선이라고는 소금에 전 고등어 자반이 전부였다. 그렇게도 가난한 삶이었는데 지금까지 나는 잔병을 앓아보지 않았다.

그것들이 좋은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일부러 차 타고 다니면서 그런 걸 찾아먹는다. 가난하게, 평범하게 사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면서 기자는 그의 말을 '아무리 못해도 죽기보다 더 할까'라는 것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지금 우리에게 그 이상으로 필요한 말이 또 무엇이 있을까.

▲문학외적 인터뷰 낯설지만 耳順경험으로 할말은 많아

"절망에 길들여진 사람은 절망만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고, 희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필경 희망이 찾아온다."IMF의 충격이 가장 깊었던 98년 12월30일자 한국일보에 그가 기고한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제목의 시론 끝 부분이다.

그는 기자에게 "낙관은 최상의 삶의 전략이다"고 말했다. "몇 해전 TV에서 두 평짜리 두부공장을 하는 젊은 부부 이야기를 봤다. 밤새워 일하고 아침에 잠깐 눈을 부친 후 오후에는 콩을 사러 시장에 가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표정이 너무 밝았다.

TV리포터가 남편에게 발가락이 하나 없는 걸 보고는 '발가락이 하나 없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아이고, 아직 아홉 개나 남아있습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게 낙관이다. 이게 삶을 바르게 지탱해주는 기본이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인터뷰를 해왔다. 신문사에 비치된 그에 관한 스크랩은 한 권이 가득하다.

이번처럼 신문 한 페이지에 사진도 대문짝만하게 실린 인터뷰도 여러 차례다. 모두 그의 문학에 대한 것이다.

이처럼 '문학적 이야기만 해온 그에게 '요즘처럼 앞이 안 보이는 세상에서 희망을 갖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주제로 인터뷰를 요청하기는 좀 찜찜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이야기는 나보다 더 잘 해줄 사람이 많을텐데‥."라면서도 선선히 응했다.

마치 자신도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는 듯, 이런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 쉽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럴 것이다.

온전히 이순(耳順)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빈한하게 태어나 큰 흠 없는 지아비로서, 다섯 아이를 장성시킨 사람이라면, 따르는 후배가 많고 동배들로부터도 손가락질 받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혼란한 세태에 대해 할 말이 더 많을 것이다.

정숭호 편집국 부국장

so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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