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검표를 둘러싼 공화ㆍ민주 양당의 설전이 점입가경이다. 양측은 11일 오후 2시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에서 수작업으로 세 번째 재검표가 시작되자 매 순간마다 충돌했다.투표용지가 완전히 천공됐는지, 천공기에 눌리기만 했는지, 혹은 반쯤 뚫렸는지, 또 이 투표용지를 유효표로 간주해야 할 지를 놓고 고함과 비난이 하루종일 끊이지 않았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고의로 무효표를 양산해 내고 주장하는 반면, 공화당은 "뚫리지 않고 눌려있기만 한 표까지도 민주당이 유효표에 넣으려고 한다" 고 볼멘소리를 했다.
민주당 참관인의 이의제기로 개표가 늦어지는데 불만을 품은 한 공화당원이 "제발 가만히 놔두라" 고 고함치자, 민주당원은 "뭔 소리를 하는 거냐" 며 거칠게 반박,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선관위의 찰스 버튼 재판관은 "양측이 투표용지를 매번 검표할 때마다 이의를 제기한다면 검표과정은 절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고 불만을 토로했다.
▲민주당 표정:광화가 먼저 소송 내심반
민주당은 팜 비치 카운티의 3개 선거구에서 진행된 이날 재검표에서 대통령 후보자 어느쪽에도 기표가 안 된 것으로 이전 컴퓨터 집계 결과 판명됐던 501표의 향방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대부분이 앨 고어 후보의 것으로 굳게 믿고 있는 민주당은 해외 부재자투표가 아니더라도 이 무효표의 수작업 검표를 통해 양 후보의 잠정득표차인 327표를 무난히 극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팜 비치 외 민주당이 첫 번째 검표 결과에 강한 의혹을 갖고 있는 볼루시아, 마이애미_데이드 등 다른 3개 카운티에서도 수작업 검표가 이뤄진다면 플로리다주에서 고어 승리는 기정사실이라는 분위기다.
이날 공화당측이 팜 비치, 볼루시아, 마이애미_데이드 등 3개 카운티의 수작업 검표를 중단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연방법원에 제기하면서 오전 9시부터 예정됐던 수작업 재검표가 오후로 연기되자 민주당은 "민심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며 공화당의 소송 취하를 강력 촉구했다.
또 공화당이 먼저 소송카드를 들고 나온 만큼 민주당이 투표용지의 난맥상 등을 놓고 고려하고 있는 법적 대응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상당부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볼루시아 카운티는 이날 개시키로 했던 수작업 검표를 공화당의 소송제기로 12일로 미뤘고, 마이애미_데이드 카운티는 13일 법원 판결을 지켜본 뒤 14일 수작업 검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공화당 표정:정권인수 공론화 서둘러
조지 W. 부시 후보 진영은 재검표, 특히 수작업에 의한 재검표의 법적 하자를 계속 여론에 확산시키면서 한편으로 정권인수 작업을 공론화하는 등 선거승리를 기정 사실화하는 `양동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부시 후보는 10일 팜 비치 카운티 재검표 결정이 내려진 뒤 처음 기자들에게 한 공개발언을 통해 "차기 행정부 구성을 준비중" 이라고 밝혀 사실상 자신의 승리가 확정됐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그러나 재검표를 둘러싸고 참모진들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은 "민주당측이 플로리다의 선거결과를 계속 문제 삼는다면 공화당 역시 고어 후보가 근소한 차로 이긴 다른 주들에서 똑같이 문제를 제기할 것" 이라며 "민주당은 국익을 고려, 질서 정연한 정권이양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는 입장을 밝혔다.
터커 에스쿠 대변인은 "공화당이 소송을 통해 시간 벌기 작전을 펴고 있다" 는 크리스 리헤인 고어 후보 대변인의 발언에 대해 "그들은 지연이라는 말을 쓸 자격이 없다" 며 "8건의 달하는 소송을 지원하고 있는 민주당이야말로 모든 것을 지연시키고 있다" 고 강하게 비난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무효표 주범은 '천공 부스러기'
미 대선의 당락을 좌우할 플로리다주 4개 카운티의 무효표는 크게 후보 2명을 동시에 기표(Overvote)했거나 완벽하게 펀칭이 안돼 딱지가 붙어있는 경우(Undervote)로 구분된다.
이중(二重) 기표는 투표자의 의사가 불명확하므로 무효표로 남겠지만, 후자의 경우 단지 완벽하게 천공(穿孔)되지 않았을 뿐이므로 유효표로 판정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재검표 논란의 초점은 펀치식 투표용지의 '천공 부스러기'에 모아진다. 펀치식 투표는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투표기에 넣고 후보를 선택하면 용지에 직사각형의 구멍이 생기는데, 천공된 부분이 투표용지에서 떨어지지 않고 남아있을 때는 컴퓨터집계기가 득표로 처리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수작업 검표를 통해 집계기가 무효처리한 표를 유효표로 정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수작업을 해보면 천공 정도가 애매해 판정하기 곤란한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11일 수작업 재검표가 시작된 팜 비치 카운티 선관위는 당초 펀칭 구멍을 통해 햇빛이 조금이라도 들어올 경우 유효표로 인정한다는 기준을 정했으나 민주당측이 "구멍 중 한쪽이 펀칭됐더라도 햇빛이 통과하지 않을 수 있다"며 이의를 제기하자 '햇빛 테스트'를 포기했다. 대신 한쪽 귀퉁이라도 펀칭될 경우 유효표로 인정키로 했다.
미국 전체의 투표구중 3분의1 이상이 펀치식 투표를 이용하고 있지만 불완전 천공이 많아 선거철마다 논란거리가 돼왔다. 오하이오주의 경우 사각형의 네 개의 귀퉁이 중 세 개가 떨어져 있어야만 천공 부스러기를 떼어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동준기자
d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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