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작은 선거를 치르고 있는 대학가의 분위기는 여전히 활기차다. 단과대 학생회장을 뽑기 위해 선거운동원들은 후보자의 얼굴이 박힌 홍보판을 몸에 걸고 다니거나, 한 줄로 서서 후보자 이름을 연호하며, 율동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 한다.달라진 것은 대부분 남녀 함께 런닝 메이트가 되거나, 여학생이 회장으로 입후보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이런 것일거라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런 학생들이 유난히 주눅들고 긴장하는 순간이 있다.
대학졸업 후 취업과 관련한 요즘의 상황을 논의하고 있노라면 학생들은 바싹 긴장한 모습으로 듣고 있다가 점점 풀이 죽는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대기업의 부도와 앞으로 이어질 노동자의 무더기 퇴출과 감원이라는 사회적 상황은 취업의 계절을 앞둔 대학가 학생들의 얼굴에 더욱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취업관련 기관의 분석에 의하면 회사들이 신규대졸 인력에게 다시 빗장을 잠그고 있다는 소식이고, 대졸 취업 재수생과 올해 대졸 예정자를 합해 합해 약 35만명에 달하는 신규 취업 희망자가 있지만 정규직 일자리는 8만 5,000개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대학졸업자 10명 가운데 7명 정도가 임시, 일용직에 머물거나 실업자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취업 여부가 궁금해 점집에 드나든다는 것도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여성문제를 전공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여학생들을 대면해야 하는 나의 심정은 더욱 착잡하다. 요즈음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느끼는 여학생들의 취업 의욕은 놀라울 정도로 상승하고 있다.
여학생들은 멋진 결혼보다는 힘들어도 직업활동을 통해 자신을 성취하고 인정받고자 하며, 따라서 여학생 중 90% 이상이 취업을 당연한 자신의 진로로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고학력 여성일수록 취업률이 높아지는 것과는 달리, 대졸여성의 취업률이 유난히 낮은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들의 높은 취업의욕은 오히려 더 큰 좌절감으로 이어질 뿐이다.
때로는 지식기반경제와 정보화 사회로의 이행과정에 유연하고 창조적인 감성을 갖고있는 고학력 여성인력이 중요해질 것이며, 21세기 고용구조에 여성인력이 중심이 된 지각변동(genderquake)이 있을 것이라는 예견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아직 먼 이야기일 뿐이다.
대졸 여성이 체감하는 취업의 현실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취업 기회의 첫 관문에서부터, 입사이후의 배치와 승진 그리고 퇴직에 이르기까지 취업을 계획하고 있는 여학생들의 앞에 놓여있는 길은 위태롭기만 하다. 특히 입사지원서에는 여전히 성별, 출신학교를 제일 먼저 적게 되어 있으며, 이 난을 적는 순간 여성, 지방대 학생들은 부차적인 채용 대상자가 된다.
한 여성단체에서 취업 시즌을 맞아 고용차별을 막기 위해 직무능력 평가를 중심으로 한 내용의 '평등한 입사지원서 모델'을 제시하고, 기업이 이를 채택하도록 요청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취업 시즌만 되면 정부 관계자들은 여성이나 지방대생에 대한 취업 차별이 없도록 하겠다고 발표하지만, 구체적인 대책은 항상 없다.
따라서 취업의 첫 관문에서 자신이 갈고 닦은 능력을 평가받기도 전에 배제되어 버려 도전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여성들의 취업권리를 위한 기본적인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안 그래도 바늘구멍 만큼 좁아져 버린 취업기회의 현실 속에서 이 '평등 입사지원서'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대학에서 함께 가꾸어낸 평등사회를 위한 희망을, 사회 진입의 첫 관문에서 성별이나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포기 당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자그마한 운동이나마 의미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강이수 ㆍ 상지대 인문사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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