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주는 124년 전인 1876년 대선 때 이번 사태 이상의 선거 공방의 중심에 선 전례를 갖고있다.남북전쟁이 끝난 지 11년 만에 치러진 당시 대선에서는 재개표 및 선거무효 논란이 벌어진 끝에 이듬해 3월 4일 신임 대통령이 취임하기 56시간 전 극적으로 정치적 대타협이 이뤄졌다.
1차 개표 결과 뉴욕주 주지사인 민주당의 사무엘 J 틸든이 51% 득표로 48%의 공화당의 루더포드 B 헤이스 오하이오 주지사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듯했다. 틸든은 선거인단 경쟁에서도 당선 확정 선거인수에 1명 모자란 184명으로 165명의 헤이스를 크게 앞섰다.
그러나 양당이 오리건주와 남부의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서 서로 승리했다고 주장하면서 당선자 결정은 한없이 유예됐다. 특히 공화당은 플로리다주에서 민주당원들이 새로 참정권을 갖게 된 흑인들의 투표행위를 방해했다며 재선거를 요구했다.
투명성 확보를 위해 의회는 공화당 8명, 민주당 7명으로 구성된 여야 합동 위원회를 구성했다. 공화당이 우세했던 위원회는 남북전쟁에서 북쪽이 승리한 것처럼 투표를 통해 헤이스의 승리를 결정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전국적으로 비난이 쇄도했고 정국이 극도의 분열상을 보였다. 이듬해 초까지 계속된 이 같은 사태는 그러나 민주당이 공화당의 집권을 인정하는 대신 남부지역에서 백인 중심의 법률 인정, 연방군 철수 등에 합의함으로써 극적으로 마무리됐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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