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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김영수 - 황운성 "추위보다 사회냉대 더 서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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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김영수 - 황운성 "추위보다 사회냉대 더 서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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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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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지나면 추위가 오는 게 자연의 이치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본격적인 추위가 오기도 전에 벌써부터 꽁꽁 얼어붙고 있다. 기업이 무더기로 무너지면서 또 얼마나 많은 이웃이 거리로 내몰리고 노숙의 고통에 빠질 것인가.서울역서 노숙자 생활을 하다 지금은 열심히 자활의 길을 걷고 있는 김영수(가명)씨와 노숙자의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있는 황운성 노숙자다시서기지원센터 소장이 노숙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만났다. 김씨는 사회적 편견이 싫다며 얼굴과 실명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김영수 중장비업체 직원

김영수 1952년 경북에서 태어났다. 76~92년 전선업체에서 중장비 운전사로 일한 뒤 97년부터 중장비업체를 운영했다. 98년 9월 부도를 내고 99년 1~3월 노숙생활을 했다.

99년3월부터 자활의 꿈을 안고 자활 노숙자 시설인 희망의 집에 머물고있으며 99년11월 중장비 업체에 취직해 현재 가족 결합을 기다리고 있다.

■황운성 노숙인 지원센터 소장

황운성(黃雲聖)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80년 성균관대 유학과에 입학한 뒤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87~89년 동부노동상담소장을 지냈다. 96년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해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99년 1~6월 노숙자 거주 시설인 자유의 집 소장을 맡았으며 98년9월부터 현재까지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소장을 맡고 있다.

_ 경제가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노숙자를 다시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황운성 = 아직까지 크게 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해 이맘 때 추산한 서울의 노숙자는 3,800여명이었는데 지금은 대략 3,300명 정도됩니다. 문제는 내년 봄이지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은 97년 말 닥쳤지만 노숙자는 98년 3월에 가장 많았거든요.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하면 6개월 정도 지난 뒤 노숙자가 늘어납니다.

버틸 때까지 버티는데 그 기간이 6개월 정도 되지요. 다만 지방에서 올라온 노숙자는 이미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보다 지방경제가 먼저 무너진다는 것이지요. 노숙자의 60%가 건설일용직 출신인데 지금 건설 회사들 무더기 퇴출되는 것도 걱정거리입니다.

▦김영수 = 저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노숙을 했습니다. 한 회사에서 16년간 중장비 운전사로 일하다 중장비 사업에 뛰어든 게 97년말이었어요.

처음엔 그럭저럭 잘 됐는데 IMF를 맞았어요. 공사 대금을 한푼도 못받으면서 98년 9월 결국 2억원의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지요. 집에 수도와 전기가 끊기고 아이들 카세트에까지 빨간 딱지가 붙었어요. 고혈압과 신경쇠약에 걸린 아내는 아이들과 친정으로 가버렸습니다.

살 마음이 없어졌지요. 죽으려고 1주일간 굶기도 하고 넥타이로 목도 매 보았지만 죽어지지 않더군요. 막막함과 무력감 속에서 도망치다시피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노숙자 생활은 99년1월부터 두달반 정도 했어요.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기만 합니다.

▦황운성 = 몹시 추울 때였죠?

▦김영수 = 말도 마십시오. 봉사자들이 주는 아침 먹고 점심과 저녁은 거의 굶었어요.

밤 12시까지 서울역 대합실에 있다 쫓아내면 종이박스나 스티로폼을 요 삼아, 신문지를 이불 삼아 지하도에서 눈을 붙였습니다. 추위가 뼈 속까지 스며들었어요. 새벽 3시 반 서울역 대합실이 다시 문을 열면 들어가 물 몇 모금 마시며 갈증을 삭였죠.

한번은 지하도에서 잠깐 잠든 사이 속옷 몇 벌과 4만원이 든 가방을 잃어버렸어요.

전 재산이었는데.

▦황운성 = 그 고통 알만 합니다. 자유의 집서 일하느라 사흘간 한숨 못잔 적이 있어요.

4일째 되는 날 더 이상 졸음을 견디기 어려워 냉방에서 담요 한 장 깔고 잠을 자는데 두시간 이상 잘 수가 없었어요. 추운 곳에서 자는 게 그렇게 힘든 줄 미처 몰랐습니다.

▦김영수 = 그때 몸이 너무 많이 망가졌습니다. 요즘 건강을 회복하기위해 매일 3km 씩 달리지만 노숙생활의 후유증으로 날이 궂으면 몸이 쑤시고 위장도 나빠 소화를 잘 못시키고 있습니다.

▦황운성 = 요즘은 어떻게 생활하십니까.

▦김영수 = 노숙생활을 하다 99년 3월부터 희망의 집에 기거하고 있습니다. 1종 면허증과 중기사업의 경력이 있어서 중기업체 운전사로 정식 취직이 됐어요.

오전7시부터 오후 6시30분, 늦을 때는 오후9~10시까지 일합니다.

_ 노숙자들이 자활에 성공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는 것 같은데요.

▦황운성 = 우선 노숙의 원인을 잘 알아야 합니다. 김선생님처럼 갑자기 실직한 분들은 노동 의욕이 참 강합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가정서 버림받거나 알코올중독 혹은 정신적 장애가 있어 노숙자가 된 분도 있어요. 전자라면 직업알선이나 주거제공을 통해 사회로 복귀토록 하는 '자활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이미 그럭저럭 체계를 갖췄습니다. 하지만 후자를 위한 프로그램은 전무합니다.

▦김영수 = 노숙자들은 대부분 어떻게든 일어나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각자 노숙하게 된 원인이 다르고 바라는 것도 달라요. 건설일용직을 한 분도 있고 사무직을 하다가 노숙자가 된 분도 있는데 이들을 한 곳에 수용하고 꼭 같은 대책을 적용하니 문제가 있는 겁니다.

능력이나 기능, 연령에 따라 각각 다른 정책을 추진해 주었으면 합니다.

▦황운성 = 저는 노숙자 복지에 관한 법적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사실 노숙자 복지 예산은 법적 집행 근거가 없어요. 노인이면 노인복지, 부랑인이면 부랑인 복지에 대해 법적 근거가 있습니다.

노숙자의 자활 또는 재활을 위해서는 전문 인력이 투입돼야 하는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모두 임시직이기 때문이지요. 전문 인력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하려고 해도 신분이 불안하니까 금방 떠나버립니다. 사실 저도 임시직입니다.(웃음) 노숙자 시설도 사실은 임시 시설들입니다. 안정적인 거주지가 못돼죠. 그나마 지방에는 이런 시설조차 갖춰져 있지 않아요.

▦김영수 = 무엇보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짜야 합니다. 저같이 중장비를 운전하는 노숙자들에게는 중장비를 국가가 임대해주거나 관급공사를 맡겨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공사 한 군데만 들어가도 금방 재기할 수 있거든요. 임시방편인 공공근로 같은 것에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공장에 갈 수 있는 사람은 공장에서라도 채용토록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또 한가지,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거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가족이 모이면 노숙자 문제는 해결됩니다. 임대주택 같은 방안은 어떨까요.

▦황운성 = 참, 김선생님 가족은 어떻습니까. 노숙자들중 가정이 해체돼 큰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요.

▦김영수 = 대학교에 다니는 딸 둘, 고3인 아들 하나가 있습니다. 제 처는 현재 지방에서 월 6만원의 단칸 월셋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지요. 대학에 다니는 큰 딸은 제가 돈을 벌어 복학시켰어요. 제 처나 아이들 모두 저 이상으로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지금은 저와 떨어져 살지만 언젠가는 한 집에 모여 살 수 있을 겁니다. 그 날을 기다리며 130만원 정도 되는 월급중 90% 이상을 저축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1만원도 안쓰는 때가 있습니다.

▦황운성 = 사회적 편견이 사라져야 겠습니다. 현재 희망의 집은 대부분 사회복지관의 한 켠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기거하는 분이나, 복지관을 찾는 주민이나 서로들 불편해 합니다. 독립된 공간에 희망의 집을 만들어야겠는데, 사실은 반대가 참 심합니다.

한번은 서울의 회기동과 영등포역 부근에 희망의 집을 만들려고 했더니 주민들이 인근 도로까지 점거해가며 반대했습니다. 무산되고 말았죠. 안타깝고 답답했습니다.

▦김영수 = 앞서도 말했지만 노숙자중 상당수는 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심신이 망가진 이상한 사람들로 보고 있어요. 저도 형제, 친구 모두와 연락을 끊었습니다. 노숙했다는 사실은 지난해 8월 제가 처에게만 살짝 이야기 했습니다.

제 처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짓더군요. (이 대목에서 김씨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하지만 저라고 노숙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했겠습니까.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숙자를 어려움에 처한 이웃으로 생각하고 다들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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