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건너갔던 고암(顧庵) 이응노(李應魯~ 1904~1989)의 초기 그림들이 42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1958년 고암은 프랑스로 떠나기 전 서울 소공동 중앙공보관에서 '도불기념전' 을 개최했다. 그때 선보였던 그림 61점을 가지고 부인 박인경(75)씨가 14일부터 이응노 미술관에서 개관 기념전을 연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외국인(프랑스 국적) 신분으로 미술관 관장이 된 박씨는 " 당시 고암은 총을 팔아먹고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이 어디 있느냐며 그림을 사겠다는 많은 제의를 뿌리치고 한 점도 팔지 않은 채 이삿짐에 넣었다" 면서 " 프랑스에 정착하기 전 1년 동안 고암은 이 그림들을 가지고 독일 순회전을 가졌다"고 말했다.
'해저' '생맥' '자화상' 등 고암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신축성있는 붓놀림을 볼 수 있는 반추상화 61점이 공개된다. 본인의 전성기를 장식했던 문자추상 등 완전추상 작품은 아니지만, 고암은 50년대 한국화단이 고답적인 산수화에 빠져있을 때 얼굴표현을 대담하게 생략한 채 이목구비를 암시하는 추상화까지 시도, 다양한 실험정신을 보여 주었다.
고암은 파리에 정착한 후에는 자신의 그림세계를 완전히 바꾸면서 정작 이 작품들을 한번도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채 보관해왔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이응노 미술관(02-3217-5672)은 부지 170평, 건평 110평 규모의 3층 건물이다. 1층 전시장, 2층 학예연구실, 3층 작업공간으로 꾸며졌다. 미술관측은 전시 공간이 협소해 61점 중 절반씩 1차(12월 10일까지), 2차(12월 13~29일)로 나누어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파리 근교에 있는 고암서방은 기념관으로, 평창동 미술관은 고암에 대한 연구활동과 전시사업을 담당케 된다"면서 "파리에 있는 고암의 아틀리에는 매년 국내의 신진작가와 이론가 1명씩을 초대, 생활비와 항공료 등을 무상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림을 함부로 팔지 않고 잘 보관해 두었다가 이렇게 전시회를 열게 돼 기쁘다"면서 "한 때 정치적 핍박도 많이 받았지만 내조국은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들은 대여 형식으로 건너왔기 때문에, 전시가 끝나면 다시 프랑스로 옮겨질 예정이다.
인터넷 상(www.ungnolee-museum.org)으로도 그의 전시를 볼 수 있으며, 12월 2일 오후 2시 이화여대박물관 시청각실에서는 고암의 예술세계를 재평가하는 개관 기념 학술대회가 열린다. 인사동과 평창동을 잇는 미술관 순회버스를 타면 이응노미술관으로 갈 수 있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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