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방학에는 우리 아이도 어학연수를 보내야 할 텐데."초중학생 대상의 해외 어학연수가 붐을 이루며 부모들의 고민이 늘었다. 몇 백만원씩 하는 비용도 부담스럽고 단기간의 어학연수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그러나 한 반에 너댓 명 많게는 열댓 명씩 떠나는 분위기이다 보니 가만히 앉아 있기도 불안하다.
우르르 몰려나가는 해외 어학연수가 과연 바람직한지, 이왕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면 어떤 프로그램이 효과적인지, 해외연수 대신 국내에서 실시되는 영어캠프는 어떤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전업주부 김숙희(37ㆍ서울 노원구 중계동)씨는 지난 여름 두 자녀만 달랑 해외 어학연수를 보내는 대신 자신이 직접 아이들을 데리고 한 달간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교실에서 하는 어학수업보다 다리품을 팔며 많은 곳을 다니는 것이 아이들의 경험과 사고의 폭을 넓히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소신 때문이었다. 박물관과 도시들을 구경하면서 아이들은 역사와 사회를 실감나게 배웠다.
넉넉하지 않은 경비 때문에 패스트푸드와 도시락을 먹어야 했고 선물을 사지 못해 불만은 컸지만 아이들에게는 고생도 교육이 됐다.
미국에서 풍요 속의 검소와 절제까지 보고 온 것이다. 김씨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학습동기와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영어는 목적지를 찾아가고 일상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연스럽게 익혔다.
보통 엄마들처럼 영어에 자신이 없는 그는 6개월 전부터 여행 준비를 했다. 평소에는 비싼 강습료 때문에 보내지 못하던 영어학원에 아이들을 등록시키고 자신도 영어회화책을 붙들고 지냈다. 제한된 경비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항공편 예약, 숙박 장소ㆍ여행지 선정 등을 모두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했다.
비용을 줄이는 것도 과제였다. 김씨는 항공료가 오르는 성수기를 피해 방학이 시작되기 직전에 미리 출발하는 방법을 택했다. LA 친척집에서 홈스테이를 한 것은 숙식비를 줄이는 효과 외에도 여행에 요긴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는 점까지 생각해서였다.
첫 두 주는 친척집을 거점으로 가까운 곳을 돌아다녔다. 여행지를 일단 LA로 정한 것은 LA 한인타운이 외국 문화에 적응하는 '쿠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학수업은 비행기 안에서부터 시작됐다. 영어에 흥미가 없어 떠나기 전부터 가지 않겠다며 애를 먹이던 둘째가 제일 먼저 배운 영어는 'occupied'와 'vacant'의 차이. 기내 화장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저절로 터득한 것이다. 화장실, 슈퍼마켓, 거리가 모두 영어 교실이 됐다. 학원에서 배운 "Would you like to give me a coke?"대신 "Coke, please"가 훨씬 잘 통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에는 수첩을 들고 옆의 사람이 하는 말을 받아 적었다가 그대로 써먹기도 했다.
LA 근교, 그랜드 캐년, 샌프란시스코,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돌아본 뒤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워싱턴, 보스턴, 뉴욕까지 다녀왔다. 자연을 주로 감상했던 서부와 달리 동부 여행은 주로 역사와 문화체험이 됐다. 백악관 앞에서 일년 내내 데모하는 스페인 아줌마, 박물관에서 접한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이 아이들의 화제가 됐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준비해 간 1,000만원을 다 써버렸다.
어학연수에 비해 결코 싸지 않은 여행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체험담을 담은 책 '엄마와 함께 하는 미국문화 체험'을 준비하고 있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해외연수 어떤게 좋은가
겨울방학을 겨냥한 해외 어학연수 프로그램들이 벌써 선을 보이고 있다. 유학원이나 여행사들이 주선해 미국에서 3~4주 실시하는 어학연수 프로그램의 경비는 보통 300만~400만원, 캐나다, 호주의 경우는 이보다 싼 200만~300만원 수준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만큼 프로그램 운영방식과 내용 등을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제일 먼저 현지 교육기관이 직접 실시하는 프로그램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연수생을 모집할 때는 모두 현지 대학이 실시한다고 광고하지만, 실제로는 국내 사설기관이 대학시설만을 빌려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한국 학생들만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데다 외부 강사로 수업을 진행해 현지 어학연수라는 본래의 목적과는 멀어지기 쉽다. 미국 정규 교육기관이 실시하는 프로그램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미 대사관이나 인터넷을 통해 현지 학교에 직접 문의해 보는 것이 제일 확실하다.
미국 정규 교육기관이 방학 동안 실시하는 어학 프로그램은 휴가가 짧은 겨울보다 여름에 많다. 미국 명문중고교가 실시하는 서머스쿨은 가격이 비싸고 모집 인원도 적지만 정규 수업에 준한 알찬 내용을 접할 수 있다. 어학연수의 효과를 살리려면 가격보다 프로그램의 충실성을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수업보다 디즈니랜드, 유니버설스튜디오 등 관광에 치중하는 프로그램도 주의해야 한다.
유학원인 서울아카데미 전옥경 원장은 "공부보다 관광에 치중한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외국생활에 대한 오해를 심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학연수 대신 관광코스를 돌고 온 아이들에게 미국은 단지 편하고 재미있는 곳일 뿐이다. 그는 "이런 자세로 유학을 쉽게 떠났다가는 공부 부담이 큰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탈선하기 쉽다"고 덧붙였다.
김동선기자
■국내서도 현지영어 배운다
"새로운 문물을 체험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죠. 하지만 굳이 비싼 비행기삯 물고 외국에 나가야만 영어공부 할 수 있나요."
영어로만 생활하는 환경이라면 해외연수를 떠나지 않고 국내서도 '생생한'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대학 부설 외국어교육원이나 어린이 대상 영어학원에서 방학을 맞아 내놓은 영어캠프.
그 안에서 원어민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며 영어로 생활까지 하는데, 대개 2주 안팎의 프로그램으로 80만~90만원대이다.
올 여름 숙명여대 부설기관에서 실시한 어린이 영어캠프에 참가한 김현우(과천초 6)군. 그 어머니 손모(37ㆍ여ㆍ경기 과천시 중앙동)씨는 "짧은 기간일지라도 한국어와 격리돼 영어에 젖어 지내기 때문에, 해외연수보다 교육적 효과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11박 12일간 현우는 공부도 생활도 영어로 했다. 외국인 교사와 영어교육을 전공하는 한국인 교사가 함께 한 반을 맡았고, 교실 영어수업은 음악이나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과 접목됐다. 음식 만들기 콘테스트, 미니올림픽, 바비큐파티 등의 행사로 단조로움도 달래고, 저녁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원어로 보았다. 에버랜드나 한국민속촌으로 나들이를 할 때도 아이들은 영어만 썼다.
현우는 미국서 태어나 취학 전까지 살았기 때문에 듣고 말하기는 곧잘 해도 읽기와 쓰기는 처지는 편. "친구도 사귀며 재미있게 영어를 배웠고, 일기를 영어로 쓰는 것도 힘들지 않게 됐다"는 현우는 부쩍 영어에 자신감이 붙었다. 손씨는 "애들만 외국에 달랑 내보내면 영어를 제대로 배우는지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파악하기가 힘든데, 국내캠프는 부모들이 직접 발표회에서 성과를 확인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영어교육기관 YBM 시사영어사가 지난 겨울방학에 개최한 '청소년 집중 영어연수' 캠프에서는 2주동안 영어 강훈련이 이어졌다. 참가 학생들은 주말도 잊어가며 영어에 매달렸다.
하루 6시간씩 정규 영어 수업에다가 특별 클럽활동마저도 영어 일색이다. 영어일기 쓰기, 숙어 등 영어 관용구 익히기, 영어연극, 원어로 된 영화보고 토론하기 등. 올 겨울방학에도 야외활동을 배제하고 '영어공부'라는 본래의 취지에 초점을 맞춘 영어캠프를 실시한다.
겨울에는 계절적 특성을 살려서 스키캠프와 연계해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며 영어를 배우는 프로그램도 있다. 어린이전문 영어학원 SLP사 '스키영어캠프'에서는 오전에는 원어민 선생님과 영어공부를, 오후에는 스키를 배운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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