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흑인남자, 20대 부랑아, 30대 백인 직장인. 이 중에서 연쇄살인범일 것 같은 사람을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 미국 스릴러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30대 백인남성을 짚어낼 것이다. 알랭 베르베리앙 감독의 `식스 팩(Six Pack)'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생활이 문란한 여자들만을 골라 죽이는 살인범은 대사관에 근무하는 성실한 미국 남성이다.살인은 아주 치밀하다. 그 치밀함 만큼 잔인함도 일반 범죄 수준을 넘어선다. 그의 범죄는 음탕한 여자들에 대한 `응징'의 성격이 강하다. `식스 팩'은 6개들이 맥주 팩을 의미하는 것으로 두 명의 남자와 동시에 성행위를 하는 여성을 의미하는 속어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는 연쇄살인범의 별명으로 쓰였다.
이런 발상은 이미 많은 미국영화에서 보여줬던 것들이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파 배우로 분류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세븐(Seven)'의 경우를 보자. 연쇄살인범은 탐욕, 나태, 시기, 욕정 등 성경에서 말하는 7가지 죄악을 행하는 사람을 응징한다. 이를테면 탐식으로 살이 쪄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남자는 살인범 존이 음식을 계속 먹여 질식사시킨다.
“미국은 쓰레기 문화를 수출하더니 이젠 연쇄 살인범까지 수출하는군” `식스팩'에서 한 형사가 내뱉는 말이다. 아예 미국이 연쇄살인범의 본산지라고 얘기이다. 청교도적 윤리가 강한 미국에서 연쇄살인범이 많이 나오고, 그만큼 영화도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 얼마나 많은 대중이 그렇게 살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미국 시민정신의 뿌리는 청교도주의이다.
때문에 더욱 아이러니하다. 영화속에서 연쇄살인범이 흑인으로 나온 경우는 희박하다. 미국내에서도 연쇄살인이 발생하면 고등교육을 받은 독신 백인 남성을 제1차 범죄 집단으로 상정한다고 한다. 인간이 실행하기엔 무거운 질서가 사회 저변에 깔고 있으되, 현실은 나날이 더러워 지는 곳에서라면 “쓰레기를 처단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적 욕망이 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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