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표상(表象) 하는 상징물 중 하나가 화폐다. 가령 달러하면 미국이, 파운드 하면 영국이, 엔 하면 일본이 떠올려 진다.화폐는 또한 국력의 거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위정자들에게서 흔히 `화폐가치가 곧 나의 위상`이라는 잠재심리도 발견된다. 지난 김영삼 정권이 국고(외환보유고)의 바닥이 드러나는 데도 `강(强)원화'를 고집했던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화폐는 국가의 자존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자국 화폐를 포기하는 나라들이 있다. 얼마 전 남미의 에콰도르가 1백 여년 사용해온 `수크레'화를 포기한 것도 그 중 하나다. 그밖에 여러 중남미 국가에서 같은 문제가 검토되고 있다고 하니 `화폐=국가'라는 등식도 설 땅이 좁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들 나라에 새로 들어섰거나, 진출하려는 대체 화폐는 다름 아닌 미 달러화다. 이미 11개국에서 미 달러화가 그 나라의 법정통화로 쓰이고 있다.
■이는 지구촌의 급격한 `달러화(dollarization)'를 보여주는 작은 단면에 불과하다. 세계 외환시장에서 점유율이 지난 10년 사이 15%포인트 이상 늘어난 달러의 팽창 속도에 현기증이 일 정도다.
이제는 미국 내 달러보다 해외에서 도는 달러가 더 많을 정도이니, 세계는 완연한 달러 천하인 것이다. 균형자 역할을 기대했던 유로화 마저 죽을 쑤고 있어 그야말로 달러가 무인지경으로 달리고 있다.
■그 결과 미국 경제는 항상 느긋하다. 달러폐를 찍어 해외에 팔아 거두는 수입(세뇨리지 효과)만도 연간 130억달러에 달해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반면 미국 밖의 세계는 미국이 하품하면 코를 고는 지경이 됐다.
그런 미국의 경기 연착륙 시도에 최근 이상 징후가 보인다고 해서 세계가 숨을 죽이고 있다. 워싱턴의 정권마저 바뀌게 되어 이래저래 미국의 새 `장단'에 각국의 `가락'을 뜯어 고쳐야 할 판이다.
송태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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