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뒤집기 판세보도에 양진영 종일 오락가락이번 미 대선 개표 과정은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여러 차례 반전을거듭하고도 승자를 확인할 수 없는 대혼선을 빚었다.
미국 대선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대접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국 방송들이 부시 후보의당선 가능성을 확정적으로 보도했다가 취소, 선거전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일이 벌어졌다.
특히 재검표 사태로까지 비화된 플로리다주의 경우 개표과정에서 선두가 수 차례나 뒤집혀양측 후보 어느 쪽도 수긍하지 않는 상황이 됐다.
이날 개표 초반 첫 승전보가 울려 퍼진 곳은 부시 후보 진영. 부시 후보는 7일 오후6시(한국시간 8일 오전 8시) 전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먼저 투표가 끝난 인디애나와켄터키주 출구조사에서 고어 후보를 가볍게 제쳤다.
인디애나와 켄터키주에 각각걸려있는 선거인 12명과 8명이 고스란히 부시 후보에게 돌아갔다.
미주리주 등 일부 주를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에서 투표가 마감된 오후 8시 현재 부시 후보는고어 후보에 선거인 수를 54대 28로 앞질러 나갔다.
CNN은 오후 8시 30분께 부시 후보가 121명, 고어 후보가 119명의 선거인단을 각각 확보,격차가 좁혀지면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같은 시각 MSNBC는부시 후보가 130명, 고어 후보가 119명의 선거인단을 차지했다고 부시 후보의 큰우세 소식을 전했다.
고어 후보는 한때 가장 치열하게 경합한 플로리다에서 승리해 25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것으로전해졌다. CNN은 고어 후보가 미시간주(18명)와 펜실베이니아주(23) 등 대형 경합주를차례로 차지, 192대 185로 대세를 역전시켰다고 보도했다.
고어 진영은 환호했고, 부시 후보 진영은 한순간 침통한 분위기에 빠졌으나 개표가 완료되지않은 상태에서 출구조사가 나온 것을 알고 항의하자 방송들이 보도 내용을 경합으로정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락의 윤곽은 다시 오리무중에 빠져들었다.
오후 10시쯤 부시 후보는 217명의 선거인단을 확보, 172명을 얻은 고어 후보에 역전한 뒤이후 줄곧 우세를 지켜나갔다.
오후 11시가 넘어서도 플로리다의 개표 결과가 나오지않았으며 부시 후보는 246대 242로 이후 추격을 펴 온 고어에게 계속 근소한 리드를지켰다.
고어 후보 진영은 그러나 언론의 예상대로 캘리포니아, 미시간, 일리노이등 주요 주에서이긴뒤 마치 당선이 확정된 것 처럼 환호했다.
고어 후보 진영은 개표 보도가 취소된플로리다에서도 여전히 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자정이 지나면서 고어후보는 아이오와주에서 7명을 추가하면서 플로리다를 포함한 3개주를 남겨놓고 249대246으로 재역전했다.
그러다 새벽 2시가 지나 부시 후보가 플로리다에서 승리, 위스콘신과 오리건주의 개표 결과에상관없이 당선이 확정됐다고 CNN등 TV 방송들이 긴급 보도했다.
TV 화면에는 부시대고어의 선거인단 확보수가 271대 249로 나오고 부시가 미국 43대 대통령에당선됐다는 소식이 전파를 타고 전세계로 퍼졌다.
부시 후보 진영에선 순간 환호와 함께 축하의 샴페인을 터뜨렸고 고어 후보 진영은 허탈감에 젖어드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두 시간여 후 CNN은 당선보도를 취소했고 선거는 당선자가 없는 상태로 되돌아갔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박빙의 대선 승부를 벌인 것은 이번 선거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최근 가장 치열했던 선거는 1960년 존 F.케네디 민주당 후보와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가 벌인 것으로, 인기투표도에서 케네디가 49.7% 대 49.6%, 불과 0.1%포인트 차로 승리했다.
1916년에는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이 대법관 출신 찰스에반스 휴스를 선거인단수에서 277대 254, 23표차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에 앞서1876년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러더포드 헤이스 후보가 새무얼 틸든 민주당 후보를185대 184, 단 한표차로 누르는 역사상 가장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건국영웅인 토머스 제퍼슨과 아런 버어가 맞붙었던 1800년 대선에서는 각각 73표로 동수를이뤄 하원 표결로 승부가 넘어간 끝에 제퍼슨이 가까스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밖에 누고도 과반수 선거인단을 확보치 못해 역시 하원에까지 넘어가는 진통을 겪은 끝에존 퀸시 에덤스가 승리한 1824년 대선, 인기도 투표에서 과반수 획득에 실패했지만,선거인단수에서 벤자민 헤리슨 공화당 후보가 당시 대통령이었던 크로버 클리브랜드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백악관에 입성했던 1888년 선거 등이 역사가 증언하는 처절한승부로 기록돼 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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