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농지는 가격이 낮다. 그렇지만 가치까지 낮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농지의 가치는 상당히 클 뿐 아니라 앞으로 더욱 커지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사람들이 농지가 제공하는 자연경관에 갈수록 많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이 사는 대도시 주변 농지는 더욱 그럴 것이다.그래서 미국서는 대도시 주변 농지를 그린벨트로 묶는 일이 흔하다. 그 결과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자동차를 타고 20~30분만 나가면 탁 트인 농경지를 만나고 물고기 노니는 개울에 발을 담글 수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농경지를 우격다짐으로 그린벨트로 묶지는 않는다는 사실. 농부와 땅 주인에게 합리적으로 보상한다. 가장 흔한 방법은 토지를 매입하는 게 아니라 용도변경권한(개발권)만 매수하는 것이다. 소위 개발권선매제도이다.
개발권을 매각한 농부는 토지를 계속 경작할 수 있어 좋고 정부는 싼 값에 그린벨트를 확보할 수 있어 좋다. 개발권을 매입할 돈이 없으면 정부는 농부가 다른 지역에서 개발권을 행사할 수 있게 주선하는 방법을 택한다. 이것이 개발권 양도제도의 취지이다.
이처럼 미국은 이미 토지 소유권과 개발권이 분리돼있다. 소유권과 개발권의 분리, 이것이 과거 영국이나 오늘날 미국이 난개발을 억제하기위해 채택한 효과적이고 근원적인 대책이다.
국토이용은 백년대계의 일이다.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는 10년도 내다보기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국민들의 환경의식도 급속히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러면 농지의 가치도 앞으로 크게 높아질 것이다.
이제 국토이용의 백년대계는 가격이 아니라 가치에 의해 추진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농지를 엎고 신도시를 개발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될 수 있다.
농지를 도시용 토지로 개발하는 것이 반드시 경제적 이익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앞으로는 농지가 가치뿐 아니라 가격도 높아지리라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변수는 중국이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농경지가 감소, 10억 인구의 식량을 수입하는 날이면 국제 시장에서 식량가격이 뛰고 농지가격도 덩달아 뛸 것이다.
10~20년 후 난개발된 도시용 토지를 농지로 바꾸는 것이 경제적 이익이 될 날이 온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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