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ㆍ3 기업퇴출 조치에 이어 금융권과 공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수십만명이 직장을잃을 위기에 처하면서, 직장인들 사이에는 "언제 우리 차례가 올지 모른다""죄없는 샐러리맨만 봉이냐"는 탄식과 원망의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정부는 이번 퇴출조치와 구조조정 여파로 발생할 실업자 수를 5만명 수준으로 잡고 있지만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들은 "퇴출기업과 건설업계, 공공부문, 금융권 등을 합쳐연말까지 최대 25만여명의 실직자가 생겨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연구소나 노동단체의 내년 실업 전망도 어둡기만 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내년 2월실업률이 단기 최고치인 4.7%(실업자 104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고,현대경제연구원과 민주노총은 경제상황이 악화할 경우 실업자는 110만~120만명에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건설업체 직원들의 실직공포는 심각하다. 대형 건설업체의 퇴출이 하청업체의 '부도도미노'로 이어질 경우 전국적으로 16만여명의 실직자가 발생할 전망이다.
청산대상기업인 신화건설의 배모(32)씨는 "'회사를 살리자'는 일념으로 3년간 상여금한푼없이 100만원 월급으로 살아왔는데 이 무슨 날벼락이냐"며 "뭘 먹고 살아야 할지, 퇴직금은 나올 지 눈앞이 깜깜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회사의 협력업체인BM스틸 직원들은 "300개 협력업체 상당수도 연쇄부도가 불가피해 직원 1만여명이졸지에 직장을 잃게 될 판"이라며 대책마련을 하소연했다.
구조조정 한파가 눈앞에 닥친 공기업과 금융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연내 구조조정으로 금융권과 주요공기업에서 4,000여명이 일자리를 잃을 전망이다.
신한은행에 다니는 하모(33)씨는 "부실은행은 물론, 우량은행 직원들까지 대대적인구조조정과 합병조치로 일자리를 잃을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며 "IMF 사태 직후5만여명이 쫓겨난게 엊그제인데 은행원만 죄인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퇴출 대상업체 직원들은 이미 '실직 아노미'상태에 빠진 상태. 대우자동차와 현대건설 직원들은"사주의 기업경영 잘못으로 수만명의 직원이 실직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며 "왜책임을 직원들만 떠안아야 하느냐"고 울분을 토했고, 퇴출판정을 받은 피어리스의박모(41)과장은 "16년간 최선을 다해 일해온 직장을 하루 아침에 잃게 된다니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양정대기자
torch@hk.co.kr
■성남 인력시장 표정
"일자리보다 하늘에 별 따기가 더 쉬울겁니다."
입동인 7일 오전 5시 경기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인력시장'에 모인 일용직 노동자들은 볼을 때리는 추위보다 생계 걱정에 더욱 움츠러들었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선 이들은 낯선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일자리 달라"는 말부터 꺼냈다. '11·3 퇴출'을 절절히 체험하고 있는 이들의 관심을 오직 일자리 뿐이다.
다른 질문에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소리없이 다가온 '제2의 IMF'가 더 무섭다"는 김모(43)씨는 벌써 2주째 손을 놓고 있다고 한숨지었다.
이모(37)씨도 "올초만 해도 큰 건설업체 버스들이 사람들을 실어 날랐으나 요즘엔 승합차 몇대 지나가는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이런 지경이다보니 올초 6만 ~7만원 일하던 일당마저 내리막길이다. 이모(32)씨는 "겨우 잡은 일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흥정하다 보면 4만원 받는날도 있다"면서 "그나마 2만~3만원인 여자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장모(44)씨는 "입에 풀칠하기 위해 막노동을 하는 부도난 전직 사업가도 만났다"고 귀띔했다.
이날 인력시장을 찾은 사람은 어림잡아 300여명이었으나 사람을 구하는 승합차는 고작 서너대. 성남지방노동사무소 일일취업센터 한규봉(41) 팀장은 "IMF 직후와 사정이 비슷하다"면서 "오늘도 겨우 20여명만 일자리를 얻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모닥불이 시들어가는 오전 8시 30분께, 오늘도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처진 어깨,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길 인파속으로 하나 둘 사라졌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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