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되기 전에 미리 팔자.”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구조조정 전문회사나 M&A 중개업체에 나온 기업 매물들은 대부분 1년 전의 초기 펀딩(자본유치)이 끝나 자금이 소진된 정보기술(IT)분야 벤처업체가 대부분이지만 최근에는 차입금으로 연명하던 구조조정 업체들까지 은행 지원이 끊기면서 매물로 쌓이고 있다.
때문에 소위 기업 `땡처리' 시장도 생겨나고 있으며 부실 업체를 싸게 사들여 경영을 정상화한 후 재매각해 자본이익을 얻는 구조조정 펀드가 활기를 띠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 일대 대형 M&A 중개업체와 창업투자회사에는 “기업을 팔고 싶으니 원매자를 찾아달라”고 의뢰받은 기업 물건이 업체마다 100여건이 넘고 있다.
유나이티드 M&A, 한국M&A 등 `빅5 업체'의 물건만 합쳐도 500여건이 넘고, 인수합병을 주선하는 중소기업진흥공단과 기업은행에 들어온 매물까지 합하면 M&A시장에 나온 기업은 1,000여개를 훌쩍 넘는다.
유나이티드 M&A의 김태형 사장은 “경기가 하락하면서 하반기 들어 인수합병이 늘고 있지만 매물만 넘치고 원매자는 없는 실정”이라며 “매각하더라도 높은 가격을 기대했던 상반기에 비해 최근에는 서둘러 팔아만 달라고 부탁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들이 매물을 내놓더라도 사업성 없는 부문만 매각하려 하는데다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확대하고자하는 투자 마인드 자체가 위축돼 있어 실제로 매각이 성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코미트 창투의 윤현수 사장은 “기업매물 시장에 나오면 일단 갈 데까지 갔다는 인식이 강해 기업들이 굳이 돈들여 다른 회사의 사업부문을 인수하려하지 않는다”며 “인터넷기업의 사업계획서는 매수자가 들춰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인수합병을 지원하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의 구조조정지원본부에도 올들어 기업 인수 상담이 크게 늘었지만 수익모델이 없는 닷컴기업이나 경쟁력이 없는 굴뚝기업 등은 몇 달째 원매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윤종훈 M&A부장은 “올들어 기업 매각 건수가 많아져 외환위기 직후 상황으로 돌아간 느낌”이라며 “최근 인수가 성사된 8건은 모두 수익성과 기술, 현금흐름이 좋은 통신부품업체나 전기전자 분야 업체였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의 이중환 M&A팀장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높은 가격을 부르고 경영권에 대한 고집도 센 편이었지만 지금은 자금조달이나 투자유치 수준이 아니라 아예 경영자들이 백의종군하는 분위기”라며 “우량매물이 쏟아질 한 달 후쯤이 M&A의 적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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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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