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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야기 / 젊은이들 꿈,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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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야기 / 젊은이들 꿈, 축구선수

입력
2000.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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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축구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다.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관심을 업고 농구 인기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축구선수는 북한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다.북한에서는 생계 수단으로 체육과 예술이 가장 유리하기 때문에 부모들 모두가 자식들에게 체육을 시키고 싶어한다. 또 소질만 있으면 굳이 대표선수가 못돼도 희망대로 학교와 직업을 선택할 수 있어 선호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부모가 자식들에게 운동을 시킬 때 가장 선호하는 종목은 무엇보다 축구다.

나는 15살 때인 1964년 2ㆍ8체육단(현 4ㆍ25체육단)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20살 때인 1969년에 국가대표로 발탁돼 1976년까지 대표선수로 뛰었다.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도 평양시 중구역 클럽팀 감독, 후배양성국 지도원, 국가체육위원회 축구과장, 국가종합체육단 축구단장(청소년팀부터 국가대표팀까지 총괄직책) 등으로 1993년까지 축구에 관련된 일을 했다.

북한 직업 축구선수들의 생활은 중산층 이상이다. 북한에는 1~6급까지 체육 급수가 있다. 제일 낮은 6급의 경우는 일반공무원과 비슷한 수준의 대우를 받으며 위로 갈수록 공훈체육인, 인민체육인 등으로 구분된다.

월급으로 볼 때도 전반적으로 일반 공무원들보다 대우가 좋고, 체육종목 중에서도 축구가 제일 대우를 받는다. 특히 대표선수가 되면 기재사용 등에서 우선적인 대우를 받고 팬들까지 생겨나 좋은 조건에서 운동할 수 있다.

축구선수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누구나 공을 차고 싶으면 인민학교나 고등중학교에서 선수로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고등중학교나 체육구락부에서 소질을 인정 받은 14~16세 선수들은 `양성군'이라 하여 따로 리그를 운영, 엘리트 선수로 육성된다.

요즘 한국축구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에 대해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는 것을 보면 1993년의 악몽이 떠오른다. 카타르 도하에서 벌어진 `94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탈락하자 북한 당국은 감독 코치 지도원 등을 한 곳에 모아놓고 3일간 집중적으로 원인분석을 시켰다.

결국 나는 혁명화 검열을 통해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이듬해인 1994년 평양체육기구공장 노동자로 좌천되는 운명을 맞았다. 북한은 이때 선수들을 학교나 직장 등으로 내보내 5,6년간의 공백을 초래함으로써 전력 약화를 불러왔다.

프로필

윤명찬(51)씨는 90년대 초반 국가종합체육단 축구단장을 역임했으며 98년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을 전전하다 지난해 4월 귀순한 전북한축구대표팀 감독이다. 윤씨는 올해 7월부터 프로축구연맹 경기감독관으로 활약하고 있다.

전 북한축구대표팀 감독 윤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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