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축구가 아시안게임에서 3위를 했건만 우리 축구계는 영락없는 초상집이다. 3위라면 동메달이 아닌가. 패배하면 적군의 총칼에 목숨을 잃어야 하는 전쟁도 아니건만. 재미로 하자는 한낱 운동경기에 지나지 않건만.정확한 통계를 내본 건 아니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대로 그만 하면 잘한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축구협회와 언론이 더 난리다. 당장 감독부터 갈아야 한단다. 나는 허정무 감독이 그 동안 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선수들을 어릴 때부터 남미에 유학까지 시키며 기초를 다진 것도 아닌데, 그런 선수들을 데리고 고군분투한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돌을 던지다니.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인 양 떠오르고 있다. 한 마디로 상식에 어긋나는 발상이다. 기초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선수들을 데리고 그들이라고 무슨 뾰족한 재주가 있으랴. 제아무리 제갈공명을 모셔온다 하더라도 돌아오는 월드컵에서 일을 저지르기엔 너무 늦었다. 정말 훌륭한 감독을 모셔다 우리 대표팀을 한 십 년간 맡기고 2010년 월드컵을 겨냥한다면 모를까.
구관이 명관이라는 옛말이 있지만 구관이 명관이 되려면 우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역대 우리 대표팀 감독들에게 어디 변변한 기회 한번 주었던가. 무섭게 선수들을 몰아쳐 한 동안 잘 하는 듯 보이다가도 한번만 성적이 나쁘면 가차없이 내쫓겼다.
똑같은 일이 우리 정부에서도 늘 벌어진다. 교육이 백년대계라 하면서도 교육부 장관 치고 임기를 채운 이가 드물다. 언제 경질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은 어쩔 수 없이 전시용 업적을 쌓는 일이다. 엄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자기가 한 일을 과시하려들며 늘 남의 눈치를 보는 것과 흡사하다.
꿀벌의 사회에는 아침마다 그 날 동료들이 모두 일하러나갈 좋은 꿀을 미리 찾아 나서는 정찰벌들이 있다. 정찰벌이라고 늘 최고로 좋은 꿀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두 번 그리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꿀을 찾았다 해서 하루 아침에 그들을 경질하지는 않는다.
어떤 벌들이 정찰벌로 뽑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단 자질이 있는 벌들을 뽑은 후에는 그들의 경험을 존중한다. 구관이 명관이 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여유를 지녔다.
준결승전에서 우리 팀이 일본을 만났더라면 좀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도 있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도둑놈의 심보다. 일본은 우승을 할만한 자격을 갖췄다. 우리가 그 동안 한일감정을 앞세워 악으로 가끔 그들을 제압하며 만족해하는 동안 그들은 착실히 기초를 닦았다. 일본 축구는 이번 월드컵에서 일 저지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나는 일본이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오랫동안 와신상담 기초를 닦아온 중국도 우리보다 좋은 성적을 올리길 바란다.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져야 우리도 비로소 기초의 중요성을 깨달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층집을 지으려면 일층을 먼저 지어야 한다는 걸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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