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 온 몸을 던지는 자세를 보였더라면 기업도 살리고 대기업 경영자로서 높이 인정 받았을 것이다.”6일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계열사 주식 전량 포기' 결단을 골자로 한 현대건설의 자구계획 발표를 접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응이다.
올들어 현대건설에 닥친 유동성 위기는 모두 4차례. 시장 참여자들은 과연 이번 발표가 마지막이 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2차 기업구조조정인 `11ㆍ3 퇴출'에 대해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최우석(崔禹錫) 삼성경제연구소장은 “11ㆍ3 발표를 보면 영업 이익으로 빚 이자도 못버는 기업이 상당한데도 은행들이 당장 부담스러워 회생 기업으로 판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 경영진이 `수류탄 돌리기'를 하듯 부실기업 처리를 미루는 바람에 금융시장이 계속 부담을 안고 가게 됐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부실기업 퇴출 조치를 통해 불확실성을 제거, 시장 기능을 회복시키겠다고 공언했으나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웠다는 비판이다.
11ㆍ3 퇴출은 1998년 5월의 1차 부실기업 퇴출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정부는 55개 기업을 퇴출시키면서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에 대해서는 `생존 가능'판정을 내렸다. 이후 대우의 부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지난해 8월 침몰하고 말았다. 한국경제는 지금도 그 `대우의 덫'에 물려 신음하고 있다.
정부는 부실기업 퇴출을 외치면서도 막상 결정단계에서는 `일단 살리고 보자'식의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퇴출 없는 시장은 지옥 없는 종교와 같다.' 이 말만큼 한국의 구조조정 실상을 표현해 주는 말은 없는 것 같다.
금융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겠다던 2단계 금융구조조정은 `부실금융기관 총집합 기관 탄생'으로 귀결되는 양상이다.
정부는 한빛 평화 광주 제주은행 등 공적자금 투입은행과 부실종금사, 부실보험사 등을 묶는 금융지주회사를 만든다는 구상을 짜고 있다. 어떻게 점포와 인원을 축소하고 생산성을 높이는가 하는 문제는 뒷전이다. 은행들도 뼈를 깎는 자구노력 보다는 공적자금을 얼마나 많이 받아내느냐에 혈안이 돼 있다.
오늘날 위기는 지난해 `반짝 경기'를 착각하고 정부와 금융기관, 기업이 구조조정의 고삐를 늦춘 데 따른 결과물이다.
전문가마다 정책 당국자와 금융기관, 기업들이 `목숨을 건다'는 자세로 이번 구조조정에 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조명현(曺明鉉)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출자전환을 추진하는 대기업이나 공적자금을 투입할 금융기관은 외국인 전문경영인이라도 채용해 특단의 구조조정을 감행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조원의 적자를 내고 침몰했던 일본 닛산자동차는 1년 전 프랑스에서 영입한 `카를로스 곤(46)'사장의 지독한 `배수진 경영' 덕택에 연 3조원 이익을 내다보는 초우량기업으로 부활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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