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점을 접힌다면 신(神)에게도 목을 걸고 도전할 수 있다.”지난해 말 은퇴한 일본의 `괴물 기사'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 9단이 남긴 말이다. 넉점으로 지면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했으니 치수(실력이 약한 쪽이 덤을 받거나 미리 돌을 깔고 두는 것)의 한계를 `석점'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바둑에 도통했다는 프로기사와 아마추어 사이엔 과연 몇 점 치수가 적정한가?
프로 정상과 아마 정상들이 치수 고치기를 통해 실력 차이를 가늠해보는 `2000 프로ㆍ아마 대항전'이 그 해답을 말해 줄 것 같다.
월간 `바둑'과 PC통신 하이텔 공동주최로 8월 3일부터 시작된 프로ㆍ아마대항전은 1999년도 상금랭킹 프로 10걸과 하이텔배 아마 10강전에서 입상한 아마 10강이 매월 한 판씩 순위별로 맞대결을 펼쳐 치수를 고쳐나가는 대회.
치수는 아마측이 정선에 덤5집을 받는 것에서 시작하여 어느 한 쪽이 2연승을 거둘 경우 호선→정선→정선+덤5집→2점→3점→4점 등의 단계로 조정된다.
11월 현재 치수 고치기의 결과는 2점. 10월 31일 열린 제7위전에서 프로측은 `반상의 흑기사' 김승준 7단이 아마측의 중견 강호 김동섭 7단에게 230수 만에 백 6집승을 거두며 2연승을 기록했다.
제10위전에서 서전을 승리로 장식한 프로군단은 제9위전에선 패했으나 제 8, 7위전에서 아마 대표들을 몰아붙이며 2연승을 거둬 치수를 2점으로 벌려놓았다. 승수로는 3승1패. ★표 참조
프로군단은 세계최강 이창호 9단을 비롯하여 유창혁, 조훈현, 서봉수 9단 등 정상 4인방과 `반상의 철녀' 루이 나이웨이(芮乃偉) 9단, 차세대를 대표하는 `돌하르방' 최명훈 7단, 안조영 6단 등 초호화 멤버로 아마와의 치수를 최소한 `석점'까지 벌려놓겠다는 태세다.
6위전에 출전, 윤기현 9단의 아들인 윤사련 5단과 맞대결을 펼치는 `반상의 괴동' 목진석 5단은 “석 점을 접어주더라도 여유있는 싸움이 될 것”이라며 은근히 아마측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다.
물론 `석 점'은 아마 최강자들이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치욕의 수치. 아마랭킹 1위에 빛나는 홍맑은샘 7단을 위시해 올해 6개 아마대회를 석권한 하성봉 7단, 중견강호 서부길, 김세현, 김진환 7단 등이 총출동한 아마군단은 역대 프로ㆍ아마대항전의 최고 성적인 `정선'을 목표로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한 아마 강자는 “아마추어의 정점인 7단이 프로에게 선(先)으로 두고 6단은 2점, 5단은 3점, 4단은 4점, 3단은 5점, 2단은 6점, 초단은 7점을 놓는 것이 이론상 적정한 치수”라며 “치석(置石)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위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아마 최강자에게 3점 이상의 접바둑을 이기긴 힘들다”고 주장했다.
접바둑 1점의 효과가 얼마나 크길래 이 같은 `호언'을 가능하게 할까. 정선의 효과에 대해선 현재 5집반이 통용되고 있지만 점차 6집반으로 변하고 있는 추세다. `바둑올림픽'잉씨배의 경우 흑선(黑先)의 이득을 무려 7집반으로 계산하고 있다.
돌 한 개가 5집반~7집반의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2점 이후부터는 공식 통계가 없기에 설이 분분한 편. 1점이 늘어날 때마다 10집이 늘어난다는 설도 있고, 14집이 추가된다는 이론도 있다.
하지만 3점이나 4점부터는 놓인 돌 자체가 서로 긴밀히 호응하면서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기 때문에 집의 효과를 환산해내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 아마측이 `두점'을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비유하자면 `온실 속의 화초'나 다름없는 프로 기사들이 과거엔 아마추어의 들풀처럼 거센 완력에 휘둘리기도 했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며 “우리 프로 기사들의 수읽기와 형세 판단력, 정확도가 세계 최강 수준으로 발전한 만큼 아마와의 격차는 갈수록 크게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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