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김정욱 고등과학원장-최재천 서울대 교수과학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우리 삶의 양식을 뒤바꾼 컴퓨터와 이동전화는 어느날 밤 불을 밝힌 어떤 실험실에서 비롯한 것일 수 있다. 21세기의 삶은 더욱 첨단 과학기술과 융합할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골몰하는 이슈를 대중이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었다.
“내 생활과 과학은 무관하다”는 고정관념이나, 과학정책의 입안자들과 연구하는 사람이 따로따로인 분위기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창의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국민이 21세기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한국일보사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동원증권ㆍ㈜팬택ㆍ과학기술부가 후원하는 과학강연 `사이언스 어드벤처 21'을 개막하면서 두 기초과학자 김정욱 고등과학원장과 최재천 서울대 교수가 `과학의 대중화'를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또 `사이언스 어드벤처'를 안내할 강연자와 강연 주제를 미리 소개한다.
▲김정욱 고등과학원장
과학은 문명의 이기라는 성과물로 대중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과학 자체에 대한 공감대는 부족한 점이 없지않습니다.
일반인의 과학에 대한 사고는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유전자변형식품 원자력발전소 등에 대해선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반면 비슷한 다른 확학적 성과물은 빨리 수용하고 환영하곤 합니다.
신기술에 대해 두려움이 큰 것은 기본적으로 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최재천 교수
몰이해가 불신으로 번지는 것이 더욱 큰 문제입니다. 일단 불신이 생기면 과학자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대중은 믿지 않습니다.
결국 과학의 대중화란 과학자와 대중사이의 신뢰 쌓기입니다.
▲김정욱
우리 국민이 특별히 지적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나 과학적 호기심, 창의적 사고가 부족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미국에 유학한 우리 학생들을 보면 시험은 기가 막히게 잘 봅니다.
미국 학생들의 답안지를 보면 빙빙 돌고 돌아 답을 찾는데 우리 학생들은 곧장 답을 향해 달려갑니다. 미국교수들이 놀랍니다.
그러나 정답찾기에 능한 이들은 연구할때 빛을 못 봅니다. 박사후 연수때보면 수준차이가 나죠. F=ma(힘=질량X가속도)라는 공식을 배우는데 2주일동안 여러가지 실험을 하는 (미국) 아이들가 그저 외우는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이 공식을 써먹을때 같을수 있겠습니까.
결국 문제는 어렸을때부터 입시제도에 찌들려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호기심을 길러주지 못한 것입니다.
▲최재천
우리 국민처럼 교육수준이 높은 나라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문학작품을 모르면 창피하게 여기는게 일반적인데 DNA나 양자가 뭔지 모르는 데 대해선 오히려 당당한 것 같습니다.
▲김정욱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워싱턴에 잇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주최하는 '스미소니언 렉처 시리즈'처럼, 일반인에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회가 많습니다.
교수들이 강의를 하고, 분야에 따라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 스미소니언 항공우주관 등의 장소를 잡아 견학도 겸합니다.
이 강의에는 국회의원, 학생, 주부, 심지어 노숙자도 옵니다.
일반 대중에 과학강연을 즐겁게 즐깁니다. 과학의 대중화에 앞선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렉처'도 미국 대중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한국일보의 '사이언스 어드벤처 21'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최재천
일반 대중뿐 아니라 학자들도 다양한 지적 호기심을 자극받아야 합니다. 저는 하버드 대학에서 3년간 주니어 펠로우로 지낸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서로 전공이 다른 유망주 학자들을 뽑아 친목단체처럼 자유롭게 학문교류를 갖는 제도입니다. 철학자 생물학자 영문학자가 바라보는 시각을 접하면서 지적으로 흥분됩니다.
보고서를 써내라는 조건도 없이 학자들을 놀게 놔두죠. 저는 서울대에도 이러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가칭 '서울대 집현전'입니다.
▲김정욱
미국에서 교수 생활할때 보면 자기 전공분야와 다른 주제를 다루는 콜로키움에 와서 애들처럼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하는 대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죠. 우리 교수님들은 옆방의 동료가 뭘 연구하는지 알까요? 점심시간에 학문적 주제로 이야기하는 교수가 얼마나 됩니까? 그러니 이들에게 배우는 학생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최재천
선진국과 우리의과학수준에 대한 차이 중 또 중요한 한가지는 정채입안자의 과학적 인식입니다. 일반 국민이 모두 과학의 첨단에 서는 것은 불가능하고 불필요할 것입니다.
다만 선진국의 경우 국가정책을 이끄는 엘리트 층은 과학을 압니다.
그 중요성을 논할 정도는 됩니다. 그런 점에서 또 다시 비전공자에 대한 과학교육이 중요해집니다.
미국 하버드대 지도교수가 생물학과 수업은 안하고 인문사회분야 학생들 수업에만 열심인게 불만이었습니다. 후에 그 교수가 "누구를 교육시켜야 과학이 발전하겠는가 생각해보라. 정부에 들어가 과학정책을 입안할 이들이 과학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그들을 교육시키겠다"고 하더군요.
▲ 김정욱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레온 레더만이 요즘 무얼 하는지 아십니까? 가난한 달동네 고등학교에 가서 과학을 강의합니다. 과학을 교육받을 기회가 적을 뿐이지 그들 중에도 훌륭한 과학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과학에 무지한 인구를 방치하는 것은 미국 국력의 낭비라는 논리입니다.
▲최재천
국력의 낭비라는 지적이 맞습니다. 과학으로 무장되지 않은 이들은 결국 소수가 먹여 살려야 합니다. 예컨데 전 국민이 인터넷에 익숙하면 정부가 인터넷을 이용해 쉽게 정책을 펴겠지만 소수의 '컴맹'이 걸림돌이 되겠죠. 심하게 말해 '과학맹'은 국가발전의 저해요인입니다.
민주사회 시민이 민주주의 의무를 다하는 것처럼 21세기의 시민은 과학의 의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욱
21세기를 전망해 보면 정시적 가치가 더욱 강조될 것입니다. 우주개척과 생명공학이 크게 진보하는 등 '과학의 20세기'를 넘어이제는 과학진보의 파급효과를 생각할 때입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해야겠죠. 과학이 사회에 베푸는 시대가 아니라 사회의 요구에 과학이 부응하는, 새로운 융합의 장이 탄생할 것입니다.
▲최재천
저는 21세기를 과학문화의 세기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첨단과학은 삶의 모든 대목에서 깊이 섞이고 결합할 것입니다.
과학은 문화의 변두리가 아니라 문화의 복판에 서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일반인도 과학을 모르면 스스로 손해가 된다는 위기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과학을 이해하려고 적극적으로 덤벼드는 시대가 와야 합니다. 이것이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길입니다.
정리=김희원기자
h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