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농장까지 매각하면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혼(魂)까지 사라지는 것 아닙니까.” 현대건설이 자구계획의 하나로 서산농장을 매각하기로 하자 현대 직원들은 한결같이 “정 전 명예회장은 선산을 파는 심정일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서울 여의도의 30배(3,122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바다를 메워 조성한 서산농장은 고향인 강원도 통천을 무일푼으로 떠나온 `농군 정주영'의 통일 꿈이 담긴 곳이자 갖가지 애환이 서린 제2의 고향이다.
해외 건설 사업이 한창이던 1977년 현대는 농지 부족 해소를 위해 간척사업에 뛰어들었고 79년 정부로부터 서산 A,B지구 매립 허가를 받았다.
서산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할 뿐만 아니라 썰물 때는 물살이 거세 방조제 공사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졌지만, 방조제 건설에 초대형 폐유조선을 동원해 물살을 막는 이른바 `유조선 공법'이 적용돼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정 전 명예회장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이 공법으로 현대건설은 280억원의 공사비를 절감했으며 공기를 당초 계획했던 45개월에서 9개월로 무려 36개월이나 단축해 건설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후 내부 개답작업을 거쳐 86년부터 시험영농이 시작됐고 농장에 대한 정 전 명예회장의 애착도 남달랐다.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이 농장에 들러 농작물의 작황과 소 사육 상태를 점검했으며 단 한 평의 땅도 놀리지 않아 농군 정주영의 면모가 돋보였다.
특히 99년 3월 동아건설이 조성한 김포매립지가 매각될 때도 정 전 명예회장은 서산농장은 절대농지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해 25만8,000가마의 쌀이 수확됐으며 11월 현재 1,300여 마리의 소가 사육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는 올 5월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하면서 서산농장의 용도변경을 전제로 한 다양한 활용방안을 흘리기 시작했고, 최근 자금난이 악화하면서 담보 제공에서 급기야 매각으로까지 선회했다. 정 전 명예회장의 마지막 희망까지 결국 물거품이 된 셈이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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