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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새벽 한강 사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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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새벽 한강 사람들아

입력
2000.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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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겨우 어둠이 가실 즈음, 테니스를 하러 동네 운동장에 가려면 큰 차도를 지나야 했습니다. 새벽은 참 좋습니다. 무엇이든 새롭고, 또 곧 세상이 밝아질 거니까요.그런데 그 이른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가한 모습으로 테니스 라켓을 들고 그 새벽길을 오가는 것이 어쩐지 그 분들에게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새벽 테니스를 그만 두었습니다.

요즘에는 자전거를 탑니다. 여전히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한강 둔치에 있는 긴 자전거도로는 죄의식을 갖지 않아도 좋을 만큼 편합니다. 그곳에는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인 이른 새벽부터 걷는 사람, 달리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등 참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정확하게 그 곳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대체로 늘 만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오늘도 저는 모녀 두 분을 만났습니다. 아무래도 따님이 몸이 편치 않은 듯한데, 어머니가 딸을 위해 함께 새벽 걷기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느린 걸음으로, 그러나 뚜벅뚜벅 걸으시는 그분들 옆을 지나며 저는 매일 마음속으로 `제발 나으세요. 제발 낫게 해주세요'하고 지나갑니다. 몸을 위태롭게 좌우로 흔들며 간신히 한발 한발 걸으시는 영감님도 계십니다. 제가 잠수교에서 마포대교까지 갔다오는 동안에 5백㎙도 가지 못하십니다.

분명히 심한 아픔을 겪으셨을 몸을 스스로 의지로 견디고 계신 그 분이 존경스러워집니다. 저는 커다란 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번번이 인사를 하지만 아직 한번도 대답을 들은 적은 없습니다. 아마 소리를 내어 말씀하시기가 너무 벅차도록 애써 겨우 발을 옮기고 계신 탓이라 여겨집니다.

바람처럼 쏜살같이 자전거를 타는 젊은이도 있습니다. 헬멧에 옷도 화려합니다. 안경까지 검은색인데 이 어두운 시간에 꼭 그래야 하나 하는 느낌을 만날 때마다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마 아침 먼동이 트고 해가 한키 만큼 올라올 때까지 자전거를 타려나보다하고 요즘은 생각합니다. 젊은이니까요.

마포대교 못 미치는 곳에 이르면 트럼펫 소리가 들립니다. 자전거 길보다 훨씬 물가에 가까운 쪽에서 들리는 그 소리의 주인공을 저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에 들은 `타향살이 몇 해던가'의 가락으로 짐작하건대 틀림없이 50대가 넘은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이 새벽 끊어질 듯 이어지는 짧은 호흡으로 나팔을 부는 그 분의 어젯밤 꿈과 그 분의 세월이 궁금하면서 공연히 아파집니다.

반바지 차림으로 땀을 흠뻑 흘리며 달리기를 하는 중년 부인은 틀림없이 살을 빼려고 새벽 달리기를 하시는 듯 합니다. 스스로 무거운 몸이 불편해 뛰시는 것은 괜찮지만 `날씬함은 아름다움'이라는 못된 생각에 시달리시는 것은 아닐까 하고 염려가 됩니다. 적당히 넉넉한 몸매이신데 무리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 길도 길이라서 사고가 납니다. 요전에는 자전거길에서 정답게 손을 잡고 걸어가시는 내외분 때문에 옆의 빈 공간으로 살짝 비켜가려던 자전거가 맞은 쪽에서 오던 자전거와 부닥쳤습니다. 그 쪽에서도 두 분을 피해 빈 길을 택한 것이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무심하게도 두 분은 여전히 정답게 길을 걸어갔고, 넘어진 두 자전거에 탔던 한 분은 무릎을 다쳐 차를 불러야 했습니다. 한 달이나 지난 새벽에 다시 그 분을 뵈었는데 자전거 앞과 뒤에 번쩍거리는 등을 달고 계셨습니다.

그 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제가 읽어야 할 일, 써야 할 일 등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것을 알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만은 모든 일을 잊고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습니다. 새벽에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점점 먼동이 터오니까 요.

정진홍ㆍ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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