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언론사 사장단의 일원으로 북한에 다녀온 후 이런저런 모임에서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회를 여러번 갖게 됐다. 나의 이야기는 내가 본 제한적인 북한의 모습과 3시간동안 오찬을 함께했던 김정일국방위원장에 대한 단편적인 인상기 수준이었다.오히려 그 몇차례의 특강을 통해서 각계각층 인사들과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이 나로서는 큰 소득이었다.
남북관계의 진전속도, 대북지원의 폭과 방식에 대해서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무리와 부담이 있더라도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도 살기힘든데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식의 대북지원은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것을 `국론분열'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으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남북관계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를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은 뒤늦었지만 다행이다.
그 다양한 견해들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남북이 공존공영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무엇이 우선해야 하는가, 어떤 속도가 적당한가, 어디까지 양보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 등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 내가 특강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반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서로의 견해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음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대화를 통해서 중요한 충고를 들었는데, 그것은 정부도 언론도 남북관계가 차분하고 실속있게 진전되도록 제발 흥분하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남북관계의 진전을 반기면서도 정부와 언론이 너무 흥분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은 정곡을 찌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특히 가족상봉 방식에 불만을 터트렸다.
”지난번 가족상봉과 같은 `상봉 쇼'가 더이상 계속돼서는 안된다”고 그들은 말했다. 온국민이 TV를 통해 상봉장면을 지켜보는 가운데 곳곳에서 부둥켜안고 통곡이 터지는 상봉방식을 개선하여 그들만의 시간, 그들만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자는 것이다. 며칠동안 온국민이 함께 울면서 분단 55년의 비극을 통감하는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런 식으로 가족상봉을 지원하는 국민적 에너지를 소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전적으로 그들의 지적에 동감했다. 신문방송들은 이제 `최루탄 보도'에 열을 올려 전국을 `감동의 도가니'에 몰아넣으려 하지 말고 상봉방식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모아가야 한다. 정부 역시 전시적 효과에 대한 미련을 끊어야 한다.
가족상봉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에 면회시설을 만들어 가족상봉을 지속시키는 일이다. 1차 가족상봉에서 드러났던 문제점들이 이번 2차 상봉에서는 개선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관심이 컸던 것은 대북지원에 대한 찬반론이었다. 일방적으로 왜 주기만 하는가, 정부가 국회동의없이 북한을 계속 지원해서는 안된다,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이처럼 어려운데 우리 문제부터 해결한 다음에 북한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등의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불만을 어떻게 해소해 나가느냐는 것이 대북정책에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나는 그들과 대화하면서 얼마전 신문에서 읽은 독일 경제학자의 글을 인용했다. 크리스티안 바트린박사는 독일통일 10년을 평가하는 글에서 “통일을 위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으나 아직도 동독의 문제점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주장은 계량화할 수 있는 요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통일로 얻어진 전쟁위협의 감소, 동독인들이 누리게된 자유 등 수치로 표시할 수 없는 값비싼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쓰고 있다. 오늘 대북지원에서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것은 `계량화할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 `계량화할수 없는 가치'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 흥분과 조급함을 가라 앉히고 좀더 차분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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