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대상 부실기업 선정 및 은행 경영평가 결과 발표를 앞둔 2일 은행권은 일대 홍역을 치렀다.퇴출 대상 기업 선정을 놓고 각 은행간 입장 차이가 커 실무진들의 고성이 오가기도 했으며,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밤 늦게까지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 퇴출 여부 최종 결정이 3일 오전으로 미뤄지기도 했다.
특히 상당수 은행의 경영진은 자신들의 불안한 미래를 우려하면서 부실기업 선정작업을 병행하는 등 뒤숭숭한 하루를 보냈다.
한 은행 임원은 “마치 위암에 걸린 의사가 자신의 정밀진단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다른 간암 환자를 치료하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 은행들은 각 기업 퇴출 문제를 둘러싸고 주채권은행과 소액 채권은행간 시각 차이가 커 큰 갈등을 빚었다.
주채권은행들은 어떻게든 퇴출 만은 막아보려는 입장인 반면, 소액 채권은행들은 `지금까지 성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며 퇴출을 적극 주장했다. 모 유화업체의 경우 4개 대형 채권은행의 입장이 극명하게 달라 서로 조율하느라 큰 진통을 겪었다.
정철조(鄭哲朝) 산업은행 부총재는 “당장 시장이 좋아한다고 해서 부실 징후기업을 모두 퇴출시켰다가는 우리 기간 산업이 피폐화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시장의 요구와 국가 산업경쟁력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기업 퇴출이 금융주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각 은행 홍보팀과 IR팀은 증시에 퇴출 유력 기업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시시 각각 은행 주가의 흐름을 면밀히 분석, 상부에 보고했다.
이날 메릴린치증권이 “동아건설이 퇴출되면 조흥은행과 외환은행의 경영평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자 조흥은행은 즉각 메릴린치 측에 항의하는 한편, “동아건설에 443억원의 추가 충당금만 쌓으면 전혀 문제가 없는데 메릴린치가 실제 내용도 모르고 보고서를 냈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외환은행은 그동안 현대건설 문제에만 관심을 쏟았으나 외환은행의 독자회생이 불투명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이른 아침부터 각 부서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 직원은 “은행이 경영평가를 받고 있는 와중에 기업판정 업무까지 겹쳐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면서 “두 사안이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같은 시점에 이루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부실기업 거래가 많은 시중은행에는 거래기업의 퇴출 여부를 묻는 전화가 폭주, 직원들이 보안을 유지하느라 진땀을 뺐다.
한빛은행 관계자는 “1일 오후부터 증권가에 블랙리스트가 돌았으며 이를 기정사실화 하고 투자한 사람도 많은 것 같았다”며 “금융권이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시장이 차분하게 기다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하기도 했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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