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대검찰청에 대한 국회 법사위 감사는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이 “정현준 사설 펀드에 돈이 들어가 있다는 설이 있다”며 그동안 영문 이니셜로 거명된 여권 인사의 실명을 적시하는 바람에 여야가 격렬하게 부딪혔다. 회의는 6차례나 정회를 거듭하다, 결국 밤 12시를 넘기며 자동 유회됐다.▲예고된파행
파행의 조짐은 일찌감치 느껴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전날 이회창 총재 주재의 회의에서 "너무 무르지 않느냐"는 질책성 주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의원은 회의장에 들어가며 "오늘은 다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전 11시 30분께는 한나라당의 김기배 사무총장,정창화 총무, 목요상 정책위의장 등이 들러 박헌기 위원장 등과 밀담을 나누고 돌아갔다.
▲한나라당의 실명 공개
당 3역이 떠난 뒤 낮 12시 7분께 질의를 시작한 이주영 의원은 박순용 검찰총장에게 "정현준씨가 제출한 사설 펀드 명단에 K씨,K·K의원, P씨와 검찰 고위 간부가 포함됐다는 데 보고를 받았느냐"고 곧바로 질러나갔다.
이 의원은 이어 "증권가 등 시중에 파다한 얘기를 말하겠다"며 "민주당 권노갑 최고의원, 김옥두 김홍일의원,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맞느냐 틀리느냐"며 실명을 거론했다.
▲민주당의 반발과 여야 설전
이 의원이 실명을 적시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이를 가로 막았다.함승희 천정배 의원 등은 " 이 의원의 발언은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국감법을 위반하는 것이고,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천 의원은 "면책 특권의 방패 뒤에 숨지 말고 국감장 밖에서 떳떳하게 밝혀라"고 요구했고, 배기선 의원은 "한나라당이 국감장을 정치인 도살장으로 만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흥분한 배 의원이 "이회창 총재의 세풍 사건은 어떻게 됐느냐"고 내지르자 한나라당 정인봉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 자금에서 자유로운가"라며 맞받아쳤다.
▲정회,민주당의 반격
낮 12시30분께 정회가 됐지만 감정이 가라앉지 않은 여야는 점심을 따로 먹었다. 양당 간사가 절충에 나섰지만 민주당의 '사과 및 속기록 삭제'요구를 한나라당이 거부, 회의는 공전했다.오후 4시께 회의가 속개되자 민주당은 '검찰이 입수한 사설 펀드 명단을 확인, 네사람이 들어있는지를 조사하자"고 제의했다.한나라당의 허를 찌른 셈이다.
▲검찰의 명단 확인
박순용 검찰총장은 여야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설 펀드 명단을 확인한 뒤 "네 사람의 이름이 없다"고 답변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이 의원의 발언이 허위임이 밝혀진 만큼 사과하고 속기록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한나라당측은 '차명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정현준씨 등을 증인으로 불러 사실을 밝히자"고 역공에 나섰다. 민주당은 "이회창 총재가 와서 사과해야 한다"고 소리쳤고, 한나라당은 "금도를 지키라"며 맞받아쳤다.
▲민주당 퇴장, 자동 유회
밤 10시25분께 속개된 회의는 10분이 채 안돼 다시 정회했고 밤 12시를 넘겨 자동 유회됐다. 이주영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에서 "국민의 궁금증을 대변해야 하는 국회의원의 직무를 했을 뿐 "이라며 "사과할 일이 없다"고 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더 이상 국감이 필요없다"며 일제히 퇴장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과 이 의원의 사과,속기록 삭제 등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뒤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국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이원들도 밤 11시 20분 회의장을 떠났나.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거명 與인사들 반응
▦권노갑 최고위원=“터무니 없이 조작된 발언이고 분명한 명예훼손이다. 철저하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 사실이 아닌 것을 조작해 민심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정치 불신을 조장한데 대해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무책임한 일을 하는 정치인들은 반드시 법과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김옥두 사무총장=“거론된 사람 누구도 그 일에 관계되지 않았다. 나는 펀드에 대해서 잘 모른다. 증권가에 떠돌거나 범법자가 하는 말을 국감장에서 면책 특권을 이용해 퍼뜨리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자질이 없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면책 특권의 장막 뒤에 숨어서 비겁하게 얘기하지 말고 면책 특권이 없는 자리에 나와 정정당당히 근거를 갖고 밝혀라. 한나라당은 문제 발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김홍일 의원=“그런 사실이 없다. 정현준도 모르고 이경자도 모른다. 지금까지 주식 한번 사 본 적이 없다. 법적 대응 문제는 당의 윗분들과 상의해 결정하겠다.”
▦박준영 대변인=“전혀 사실무근이다. 엄정하게 대처 하겠다. 80년대 중앙일보에서 해직된 후 대우에서 근무하다 그만둘 때 주식을 받은 것 외에는 주식을 가져본 적이 없다. 정치인과 언론은 최소한 기본적 예의가 있어야 한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민주당 반응 "면책특권악용 국민현혹"
민주당은 2일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이 정현준ㆍ이경자 의혹사건 관련자로 여권 인사의 실명을 거론한데 대해 “면책특권이 없는 국회 밖으로 나와서 당당히 밝히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이 의원 발언에 앞서 “야당은 영문 이니셜로 정치공세를 펼게 아니라 떳떳하게 실명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박병석 대변인은 이 의원의 발언이 있자 성명을 내고 “이 의원의 발언은 면책특권을 악용해 국민을 현혹하는 한나라당식 공작정치의 전형”이라며 “만약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이 의원은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변인은 이어 “한나라당 당3역이 국정감사장에 들러 이 의원에게 노란 봉투를 전달한 뒤 그 같은 발언이 나온 점에 주목한다”며 한나라당의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한나라당은 자신이 없어 영남권 초선 의원을 시켜 면책특권이 보장된 자리에서 실명을 거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KKK' 실명공개 黨과 합작품?
간부모임서 사전논의 당3역 법사위 방문 '의혹'
한나라당 김기배 총장과 정창화 총무 목요상, 정책위의장 등 당3역은 이날 오전 이주영 의원의 실명 거론이 있기 직전 법사위 국감장을 다녀갔다.
“세 사람의 방문이 이 의원의 발언과 직접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나온 것은 당연지사.
이에 대해 김 총장은 “오비이락이다. 의원들이 상임위 발언까지 일일이 지도부에 보고하지는 않는다”고 발을 뺐고, 정 총무는 “당 3역이 매일 관심 상임위를 방문하고 있다. 오늘은 법사위 차례였다”는 말로 `지시에 의한 폭로'가 아니었음을 부각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이회창 총재 주재로 열린 당 3역 간담회에선 이 문제가 주요 사안 중 하나로 거론됐음이 확인됐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핵심 당직자는 “대검 국감에서 영어이니셜로 나돌고 있는 여권 실세 인사들에 대한 확인 작업을 할 것이란 보고가 있었고, 실명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지,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들이 있었다”면서 “당 3역이 특별히 법사위를 방문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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