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 반도 예멘의 아덴 항에서 자살 폭탄테러로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 미 구축함 콜이 지난 일요일 노르웨이 구난(救難)도크에 실려 미국으로 떠났다.승조원 17명이 희생된 테러의 배후를 찾기 위해 FBI 요원 100여명이 동원됐으나, 오리무중이다. 국제 테러의 단골인 오사마 빈 라덴이 이번에도 거론됐지만, 여느 때처럼 이렇다 할 근거는 없다.
인명피해 외에도 10억 달러짜리 구축함 수리에 1억5,000만 달러가 든다니, 미국의 손실이 간단치 않다.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 사태 와중에 발생, 아랍권의 테러에 초점이 맞춰졌다.미국도 그렇게 몰고 갔다. 그러나 아라비아해와 페르샤만, 인도양 등을 미국이 장악하는 것을 막으려는 러시아ㆍ중국ㆍ인도ㆍ이란 의 정치 군사적 행보가 활발한 상황에 주목하는 시각이 흥미롭다.
미국이 예멘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를 먼저 알아야,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멘은 홍해와 아라비아해, 인도양을 잇는 해상 교통로의 병목에 있다. 특히 아덴 항은 수심깊은 천연 양항(良港)으로, 대형 함정을 수용하는 전략 요충이다.
예멘과 아덴 항은 옛 소련과 러시아의 지역 거점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세력이 위축되면서 미국이 빠르게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아덴 항 기항권을 얻고, 지난해 아덴 동쪽 소코트라 섬에 전자정보 수집기지를 설치하는 비밀협약을 예멘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중국은 길목에 있는 이 섬이 에너지 수송로 감시역할은 물론, 미 전략폭격기 기지가 있는 디에고 가르시아 섬을 대체할 새 거점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예멘 정부가 이 섬에 건설중인 민간 공항도 미군 규격에 맞춘 것으로 의심한다. 이곳이 러시아 남부 코카서스와 중국 신장(新疆)성 등 전략 지역에 핵 공격을 할 수 있는 대규모 기지가 될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인도 또한 자신의 안보 영역인 인도양 서부와 아라비아해를 미국이 장악하는 것을 꺼린다. 대양 해군력을 갖춘 인도는 장기적으로 이 지역의 해상 패권을 노리고 있다.
또 미국의 세력확대에 가장 위협을 느끼는 이란은 지역 국가들과 미국의 접근을 막는 막후공작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배경에서 아덴 항의 폭탄테러는 배후가 누구든 간에 미국의 지역 장악 시도에 대한 경고로 평가된다.
테러를 실행한 조직은 하수인일 뿐이며, 팔레스타인 사태도 큰 틀의 지정학적 대결구도를 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군력 중심의 세력경쟁은 인도양과 남중국해로 이어지고 있다. 그 주역은 인도다. 항공모함과 탄도미사일 잠수함 세력을 보유한 인도는 곧 항모를 3척으로 늘릴 계획이어서, 미국 다음가는 대양해군으로 도약하고 있다. 인도의 지역패권 장악노력은 중국 세력의 저지와 맞닿아 있다.
중국은 인도를 마주보는 미얀마에 해군기지를 얻으려 하고 있고, 이를 통해 말라카 해협과 연결되는 안다만해에 접근하고 있다. 중국은 아직 대양 해군력이 없지만 남중국해와 말라카 해협, 인도양에 이르는 통로 확보와 지역정세 통제를 목표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할 것은 인도와 베트남, 일본의 접근이다. 특히 일본은 말라카 해협의 해적퇴치 등을 명분으로 지역 국가들과 해군 협력을 확대하고 있고, 이는 중국을 바다에서 에워싸고 견제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분석된다.
이런 움직임의 배후에서 미국은 필리핀 수빅만 기지를 다시 확보하는 한편, 러시아가 2004년까지 빌린 베트남 캄란만 해군기지를 노리고 있다. 올 봄 코언 국방장관에 이은 클린턴 대통령의 11월 베트남 방문도 캄란만 등 전략적 발판 확대가 주된 목적인 것으로 지적된다.
여기서 “21세기 패권다툼은 다시 바다와 해군력이 중심”이란 평가가 나온다. 우리의 해군력 증강도 이런 추세에 적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패권국가의 글로벌 전략에 편입돼 무모한 군비확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강병태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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