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요즘 부쩍 `낮은 단계의 연방제' 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정부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수용한 것은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논리다.하지만 남측이 낮은 단계 연방제를 수용하지도 않았고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를 통일방안 논의에 두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총재의 낮은 단계 연방제 경계는 핀트가 어긋나 보인다.
이 총재가 낮은 단계 연방제 비난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권에서는 김 대통령의 남북문제 주도권을 견제하려는 트집이라고 보고 있지만 실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이 총재는 차기 대선을 앞두고 여권이 정치판을 크게 흔드는 모종의 수를 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남북문제 카드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즉 김 대통령이 통일방안과 관련해 국민투표를 실시해서 집권연장 또는 정권 재창출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지 않느냐는 의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통일방안과 관련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면 낮은 단계 연방제가 핵심고리가 될 것이고 이 총재는 이런 가능성의 싹을 자르기 위해 낮은 단계 연방제 불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한 이 총재의 의심을 부채질한 것은 지난번 영수회담에서 김 대통령이 한 국민투표 언급이다. 당초 이 총재는 김 대통령의 국민투표 언급에 대해 큰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 고문단 모임에서 고문들이 강한 우려를 표시했을 때도 자신이 남북관계 개선과 대북지원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하게 몰아붙이니까 김 대통령이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라고 설득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총재 주변의 보수 인사들이 계속 국민투표가 김 대통령의 집권연장이나 정권재창출에 이용될 수 있다는 보고를 하면서 이 총재의 생각이 바뀌었을 개연성이 높다.
남북문제와 관련해 김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남북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석이 훨씬 많다. 우선 국민투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좋지 않다. 과거에 박정희 대통령이 이를 악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투표를 강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정치자금이 필요하고 권력기관이 뜻대로 움직여 줘야 하지만 이 정권에는 그럴 능력이 없다.
지역적 계층적 갈등과 증오를 토대로 한 국민정서나 정권에 비우호적인 언론 기류 등으로 미뤄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길도 사실상 막혀 있다.
또 1~2년 내에 북한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가능성도 없는데 무리하게 남북문제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시도는 우방국들과의 갈등을 불러 일으키기 십상이다. 김 대통령 스스로도 통일은 20~30년 후의 일로 치부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우려하는 또하나의 여권의 정치적 승부수인 대통령제 중임제 및 정부통령제 개헌 카드에 대해서는 여권 내부에서 실제 검토가 있었지만 불가쪽으로 결론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총재는 불확실한 정보와 억측에 의거해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기보다는 먼저 한반도평화 정착 및 통일 전망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총재 주변에는 냉전적 사고나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음모정치적 사고에 젖어있는 인사들이 축적돼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스스로의 신념과 철학을 확고히 세우지 못하면 흔들리기 쉽다. 문민정부 시절 대북정책 기조가 15번이나 바뀌었던 것이 좋은 예다.
이계성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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