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꼭 80을 깨겠다”“절대 3 퍼트는 하지 않겠다”“지난 패배를 깨끗이 복수하고야 말겠다”“헤드 업은 절대 하지 말자”아무 다짐 없이 골프장으로 향하는 골퍼는 없을 것이다. 골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골퍼들은 헤아릴 수 없는 다짐과 각오 속에 필드를 찾게 돼 있다. 이런 다짐들은 해이해지기 쉬운 정신과 육체를 다잡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강박관념이 되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M씨는 40대 중반에 골프를 시작했지만 2년도 안 돼 안정적으로 80대 초반을 치고 때때로 싱글을 기록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운동에 소질이 있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M씨는 금방 골프의 묘미를 깨닫고 골프마니아로 변했다.
그런 M씨가 싱글들을 모아 대회전을 꾀했다. 3명의 멤버는 M씨가 초보자일 때 함께 라운드를 했던 20년 경력의 골퍼와, 골프에 관한 한 일가를 이루고 있는 학구파 골퍼, 스윙 폼은 엉성하지만 실전에 강한 잡초형 골퍼로 짜여졌다.
M씨는 이들 3명과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2년 안에 싱글이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핀잔을 주던 20년 경력의 골퍼에겐 싱글이 되었음을 보여주어야 하고, 학구파 골퍼에겐 자신이 저속한 골퍼가 아님을 증명해보일 참이었다. 그리고 잡초형 골퍼에겐 그 동안 당했던 패배를 곱으로 되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M씨는 자신의 달라진 모습에 페이스를 잃고 헤매는 세 싱글의 얼굴을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했다.
대망의 그날이 왔다. M씨는 가볍게 스킨스 게임이나 하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스트로크 플레이를 고집했다. 그 동안 잃었던 것을 한꺼번에 찾겠다는 욕심에서였다.
게임은 살얼음판 같은 긴장 속에 시작됐다.(실은 세 명은 부담없이 게임에 임했는데 자신만 긴장하고 있었던 것을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첫 홀부터 전에 없던 실수가 속출했다. 드라이버샷이 하늘로 치솟는가 하면 뒷땅을 때리거나 생크를 내고 벙커 속에서 헤매는 일이 벌어졌다.
3퍼트도 이어졌다. 보다 못한 동반자들이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플레이하라”고 충고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보다 10타나 더 치며 전반을 끝낸 M씨는 그때서야 비로소 모든 다짐과 각오를 포기했다.
`오늘은 없었던 것으로 치자. 다음에 기회가 오겠지'이렇게 되뇌이며 후반전에 임했다. 비로소 제 페이스를 찾은 M씨는 싱글들과 대등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다.
골프를 하면서 다짐과 각오를 떨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다짐과 각오에서 자유로울 때 골프는 때때로 신천지를 열어보인다. 다짐에 짓눌릴 때 골프장은 분노와 좌절의 무덤으로 변한다.
/편집국 부국장=방민준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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