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대표팀을 선발하는 기술위원회에 꼭 팬클럽 대표도 참석한다. 말하자면 대표팀의 선발에 팬들의 인증을 받는 셈인데 이 때문인지 팬들은 대표팀이 지더라도 크게 비난하지 않는다.팬들은 축구 자체를 즐길 뿐이다.” 스페인에 취재갔을 때 한 교민에게 들은 이 이야기는 우리 대표팀이 패해 비난이 쏟아질 때마다 떠오르곤 한다.
어떤 경기든 한국팀이 첫 골을 먹은 뒤면 어김없이 대한축구협회 전화기는 불이 붙는다. 경기결과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팬들은 욕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한국팀이 이길 때는 단 한 통의 전화도 없다.
심지어 지난해 한국이 브라질을 이겼을 때도 격려의 전화는 없었다. 축구는 `총성없는 전쟁'이라지만 우리 팬들의 반응은 너무 즉각적이다. 일단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비난부터 해댄다. 인터넷사이트에는 근거없는 비난과 욕설이 난무한다.
오늘 경기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한 선수나 골을 넣지 못한 스트라이커는 비난의 대상이었다가 다음 날 골을 넣기라도 하면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다.
이번 아시안컵서는 쿠웨이트전 패배 하나로 대표팀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나빠졌다. 타이틀이 걸린 대회의 평가는 엄밀히 결과가 나온 뒤에 해야 하지만 한 경기 패배로 이후의 경기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게 됐다.
언론 역시 팬들의 반응에 편승하기 일쑤다. `이것 아니면 안된다.' `이것이 대세다'는 식으로 팬들의 비위를 맞추어 댄다.
올림픽이나 월드컵때마다 `8강, 16강이다' 떠들어대면서 성적이 나지 않으면 팬과 함께 비난의 화살을 대표팀과 축구협회에 돌린다. 이번 아시안컵서 한 방송사가 예정된 중국과의 3,4위전 TV중계를 하루 아침에 취소한 것도 언론의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취재관행도 문제다. 취재 때문에 대표팀의 훈련이 방해받는 일이 너무 많다. 지나친 일이었지만 98년 월드컵때는 차범근 감독이 언론의 취재를 금지하는 일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이번 아시안컵 기간에는 허정무 감독이 몇몇 기자와 거친 입싸움을 벌인 일도 있었다. 대회때마다, 경기때마다 대표팀을 흔든다면 외국인 감독이 한국팀을 맡는다 해도 성공할 수 없다. 월드컵까지는 이제 불과 1년 7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누가 감독을 맡든 간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물론 감독의 잘못까지 감싸주라는 말은 아니다. 단 애정없는 비난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축구를 퇴보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유승근기자 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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