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주행성능은 무엇이 결정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엔진이라고 생각한다. 고성능 엔진만 개발하면 고속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다. 이것은 틀린 말이다.고성능 엔진개발은 고속 자동차 생산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고성능 엔진에 걸맞는 브레이크시스템의 개발없이는 고속 자동차를 생산할 수 없다.
시속 200㎞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자동차엔진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시속 200㎞의 자동차를 제어할 수 있는 브레이크시스템이 개발되지 않으면 이 엔진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예를 들어 최고급 국산자동차인 `에쿠스'의 엔진과 `포니'의 브레이크시스템을 각각 장착한 자동차가 있다면 그 자동차는 `현실적으로' 포니 수준의 속도밖에 낼 수 없다.
이런 자동차는 탄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다. 이런 점에서 자동차의 주행성능을 결정하는 기관은 바로 브레이크시스템이라는 역설이 통한다.
눈을 국정운영으로 돌려보자. 한국은 40여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 초고속 질주였다. 선진국이 100~200년 동안에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30~40년만에 달성했다. 소위 `압축성장'에 성공한 것이다. 한국특유의 `조장(助長)행정'이 ~um 몫을 단단히 했다.
조장행정의 대표적인 예는 수출드라이브정책이다. 국정운영을 자동차에 비유할 경우 이같은 조장행정이 바로 엔진이다. 또 고속 질주를 가능케 한 브레이크는 사정(司正)시스템이다. 체계적인 사정활동이 뒷받침되는 않는 조장행정은 탈선하기 쉽다.
금융감독원은 발칵 뒤집어 놓은 `정현준·이경자 의혹 사건'도 사실은 조장행정의 탈선이 빚은 대형 참사다.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대표적인 조장행정은 벤처드라이브정책이다.
벤처육성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조치도 모두 취했다. 그러나 브레이크가 너무 부실하다. 벤처육성의 조장행정은 에쿠스 수준인데 비해 탈선예방을 위한 사정시스템은 포니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국의 사정시스템이 얼마나 후진적이냐는 사직동팀(경찰청 조사과)해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사직동팀은 개발독재가 절정을 이루었던 1972년 당시 박정희(朴正熙)대통령에 의해 창설됐다.
사직동팀은 당시로서는 가장 효율적인 사정시스템이었다. 지금기준으로 보면, 원시적이기 이를 데 없고 기형적이지만…. 대통령이 5번이나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사직동팀이 28년이나 대통령 직할 사정기관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두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사직동팀이 나름대로 국정운영에 많은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청와대가 사직동팀을 직접 관장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우리나라의 사정시스템이 얼마나 낙후되어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지금 포니 브레이크를 장착한 에쿠스를 타고 세계화의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형국이다. 금융시장이 그 중심지다. 제2,제3의 정현준사건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사정시스템의 피로(疲勞)가 한계점에 달해 있다. 낡은 시스템 아래에서는 아무리 유능한 사정전문가라도 감당하기 어렵다. 시스템 자체를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경제사고는 발생하게 되어 있다. 문제의 핵심은 사고를 얼마나 줄이고 사고수습을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느냐에 있다.
선진국치고 사정시스템이 부실한 곳은 없다. 한국도 선진국이 되려면 사정시스템를 총체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이백만 경제부장 mill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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