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끄는 국제기전 2題국제 바둑대회는 한국의 독무대? 천만의 말씀. 세계바둑 그랜드 슬램에 빛나던 한국의 위신이 요즘 말이 아니다. 연속 우승이 기대됐던 제2회 중국 춘란배에선 이미 초반에 출전 선수 전원이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고, `안방 잔치'나 다름없는 LG배 세계기왕전은 2억원짜리 우승컵을 중국(위빈 9단)에 내주었다.
`세계 최강'의 명예회복은 가능할 것인가. 한국바둑의 체면과 자존심이 걸린 국제대회 결승전이 11월에 잇따라 열린다. 각각 한ㆍ중, 한ㆍ일 간 대결로 좁혀진 제4회 잉씨(應氏)배와 제5회 삼성화재배이다.
이창호 vs 창하오
1, 3일 중국 청뚜(成都) 진장(錦江)호텔서 열리는 제4회 잉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 결승전(5번기)은 `세계 바둑 1인자'이창호가 `처녀우승'을 노리는 무대.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바둑 올림픽'잉씨배는 총상금 150만 달러, 우승상금 40만 달러(4억 1,000만원)로 현존 국제 기전 중 최대 규모. 다른 기전의 2∼3배에 달하는 상금 액수도 액수지만, 4년에 한번만 돌아오는 기회의 제한성 때문에 선수마다 전력을 건 사투가 불가피하다.
악몽처럼 쫓아다니던 `잉씨배 악연'을 끊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창호의 각오는 남다르다. 국내 바둑계를 평정하며 욱일승천하던 1993년 제2회 대회 때는 중국의 여류기사 루이나이웨이(芮乃偉)에게 덜미를 잡혀 초반 탈락한 뒤 한동안 슬럼프에 시달려야 했고(현재도 루이에겐 연전연패 상태),
4년 절치부심 끝에 재도전한 3회 대회(1997년) 때는 8강전에서 라이벌 유창혁에게 패해 분루를 삼켜야 했던 이창호다. 더욱이 조훈현(1회) 서봉수(2회) 유창혁(3회) 등 역대 우승을 싹쓸이해 온 바둑 명가의 계보를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막중하다.
상대는 비교적 수월한 `중국바둑 1인자' 창하오(常昊) 9단. 역대 전적 11승 1패로 이 9단이 압도적 우위를 지키고 있다. 97년 한ㆍ중 천원전 때 단 한번 패배(2승 1패)를 기록한 뒤 현재까지 내리 10승째.
기록상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창하오가 `공이증(恐李症)'에서 헤어나기란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대체적 예상이다. 더욱이 창하오는 올들어 중국 내 라이벌 저우허양(周鶴洋) 8단에게 1위 기전 기성(棋聖)을 빼앗겼을 만큼 완연한 하락세다.
하지만 일반 기전과는 다른 잉씨배만의 독특한 룰이 의외의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잉씨배는 흑과 백이 각자 180개의 돌을 확인하고 시작하며, 잡아서 따낸 돌을 상대편에게 돌려주는 것 등이 우리 바둑 규칙과 다르다.
또 백에게 7집반에 해당하는 8점(집수에 반상위의 바둑돌 수를 합산)의 덤을 부여하므로 흑을 쥔 쪽은 먼저 두는 이점을 살려 최대한 강력하고 적극적인 작전을 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함께 3시간 30분의 제한시간을 다 썼을 때 초읽기를 하지 않고 벌점을 주기 때문에 바둑은 이기고도 벌점으로 지는 경우도 있다. 다소 생소한 바둑 규칙이 과연 승패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거리다.
유창혁 vs 야마다 기미오
11월 23일에는 제5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선수권대회 결승5번기 제1국이 강원 강릉시 경포대 현대호텔에서 열린다. 두 주인공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유창혁 9단과 일본의 신예 강호 야마다 기미오(山田規三生) 8단.
유 9단은 준결승에서 `이창호 저격수' 저우허양 8단을 꺾고 올라온 `학구파' 양재호 9단에게 201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둬 네 번째 세계대회 우승을 노린다. 반면 2년 연속 이 대회 4강에 오른 야마다 8단은 `불사조' 서봉수 9단을 1집반 차이로 따돌m 고 생애 처음으로 세계무대 결승에 올랐다.
두 기사간 역대 전적은 유 9단의 1패. 지난해 삼성화재배 16강전에서 처음 만나 유 9단은 불의의 일격을 당해 탈락했고, 야마다 8단은 여세를 몰아 4강까지 진출했다. 유 9단에겐 이 대회가 1년 만의 설욕전인 셈.
물론 단 한 차례의 전적만으로 두 기사를 단순 비교하긴 힘들다. 1패의 경험이 있긴 하지만 5번기 승부에선 오히려 `큰 승부에 강한' 유 9단이 우세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야마다는 97년 한국 출신 류시훈 7단을 꺾고 일본 6대 타이틀 오조(王座)에 오른 것이 내세울만한 성적의 전부. 반면 제3회 잉씨배, 93년 99년 제6, 12회 후지쓰(富士通)배 등 세계대회 세 차례 우승, 제1, 2, 4회 LG배 세계기왕전 등 여섯 차례 준우승에 빛나는 유 9단은 경력 면에서 상대를 압도할만한 `거인'임에 분명하다.
결승 진출 9회에 준우승만 6회. 유 9단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어쩌면 상대기사가 아니라 `준우승 콤플렉스'일지도 모른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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