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는 살아남고 피라미만 다친다'는 여론의 비아냥에 부담스러워하던 채권단이 `기업퇴출의 본보기'로 동아건설을 선택했다. 그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가까스로 목숨을 연명해왔던 식물인간에게 과감히 사망을 선고한 것이다.채권단은 30일 운영위원회에서 “국내 건설경기의 지속적인 침체 등을 감안할 때 회사가 제시한 경영정상화 계획의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며 “만성적인 자금부족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신규자금 지원을 거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퇴출 배경
채권단은 그동안 1~2개 금융기관을 제외하고는 동아건설의 지원에 대해 난색을 표명해왔다. 건설경기 위축으로 영업전망이 밝지 못한데다 구조조정이나 대한통운 지급보증 문제 등 얽히고 설킨 문제들이 좀처럼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1조원의 자금이 투입됐음에도 상반기에 영업 적자를 기록한 동아건설에 또 다시 3,400억원 가량의 자금을 쏟아붓고 출자전환을 해주는 것은 워크아웃의 기본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됐다.
물론 동아건설 퇴출이 국가 경제에 미치게 될 엄청난 파장이 부담스러운 요인이었다. 500여개에 달하는 협력업체가 줄줄이 문을 닫게 되고 리비아 대수로 공사 등 해외공사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점을 채권단에 재차 강조하며 `회생'쪽으로 압력을 가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판정대상 빅3는 모두 살린다'는 등의 설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돌았던 것도 모두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정현준·이경자 의혹 사건'으로 쑥대밭이 되고 `솜방망이 퇴출 심사'라는 여론의 비난이 비등해지면서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던 처리 방향은 퇴출 쪽으로 급선회하게 됐다.
`빅3'에 속해있던 현대건설과 쌍용양회가 각각 독자 경영정상화, 출자전환을 통한 회생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결국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던 동아건설이 `총대'를 매게 된 것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대기업을 과감히 퇴출시키는 것이 오히려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리가 강하게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남은 문제는
동아건설이 퇴출로 방향을 잡았지만 남아있는 현안도 산적해 있다. 일단 가장 큰 문제가 그동안 동아건설 처리의 쟁점으로 부각됐던 7,000억원의 대한통운 지급보증과 4,000억원의 담보 문제.
대한통운측은 제3의 평가기관에 실사를 맡기기로 한 만큼 결과에 따르자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채권단은 “동아건설의 워크아웃이 중단된 만큼 협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대한통운은 자칫 1조1,00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상황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조만간 지급보증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한통운측과 회의를 가져야 하겠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대한통운도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리비아 공사 등 현재 동아건설이 수주하고 있는 해외 공사 등도 골칫거리다. 채권단 관계자는 “리비아 공사 등은 국가신인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동아건설이 계속 공사를 할 수 있도록 해 줄 방침”이라며 “하지만 향후 리비아 정부의 견해에 따라 다른 업체가 인수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동아건설 어떻게 되나
동아건설 채권단이 30일 동아건설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중단을 결의함으로써 동아건설은 향후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이날 운영위원회에서 결의된 내용에 대해 서면으로 안건을 상정, 31일중 전체 채권금융기관에게 찬반을 묻기로 했다. 하지만 신규자금 지원이 거부된데다 운영위원회 구성 16개 금융기관이 전체 채권의 60% 이상을 차지, 워크아웃 중단은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날 채권단 결정으로 동아건설은 이르면 31일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규자금 지원 중단으로 퇴출이 결정된 만큼 동아건설측이 당장 31일 만기가 돌아오는 300억원의 어음을 막지 않을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에 채권단의 최종 결의와 무관하게 자동으로 워크아웃이 중단되고 법정관리를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법정관리 신청을 하지 않고 청산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도 있지만 현재 국내외에서 진행하고 있는 공사와 협력업체 등을 감안할 때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법정관리 신청시 법원이 수용 여부를 결정하게 되지만 채권단은 법정관리는 수용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하는 분위기다. 채권단 관계자는 “우방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규모 건설회사의 법정관리를 거부할 경우 파장이 막대하기 때문에 법원이 쉽게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동아건설은 어떤 회사인가
동아건설이 55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된 직접적인 원인은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과다차입 탓이다.
80년대 리비아 대수로 공사 등 해외 플랜트 공사에 주력해온 동아건설은 대수로 공사대금을 기반으로 90년대부터 민간 건축공사와 아파트 건설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다 97년말 예기치 않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맞으면서 극심한 국내 건설경기 침체와 그에 따른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98년 9월 워크아웃 1호기업으로 지정됐다.
특히 과다한 용지 매입과 재건축 아파트 사업 대여금,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아파트 미수금 증가 등 현금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지난 98년 상반기 금융권으로부터 3차례에 걸쳐 9,600억원의 협조 융자를 받았음에도 자금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워크아웃에 돌입하자마자 오너였던 최원석 전 회장이 퇴진하고 고병우 전 회장이 사령탑을 맡아 기업 회생에 주력했으나 끝내 채권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특히 고병우 전 회장의 정치자금 제공 파문이 확산되면서 올해 상반기 내내 계속됐던 동아 내분은 지난 7월 최동섭 회장의 선임으로 정상을 찾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채권단의 불신을 낳아 워크아웃 중단으로까지 이어지는 원인이 됐다.
동아는 지난 97년말 21개에 이르렀던 계열사중 13개사와 인천매립지 등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청산, 합병하고 97년말 6,500명이었던 직원수를 현재 4,000여명으로 감축했으나 결국 자구 노력이 제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된 셈이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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