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부장제 二重악몽을 고발소설가 박완서씨가 15번째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실천문학사 발행)을 발표했다.
박씨는 올해로 고희가 됐고 등단 30주년을 맞았다. 마흔 살의 나이에 등단한 뒤 11권의 중단편집, 15권의 장편소설을 낸 그는 문단의 기념행사 제의에 " '아주 오래된 농담'을 쓰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일흔의 나이에도 전혀 식을 줄 모르는 창작력으로 사회현실에 대한 문학적 비판을 멈추지 않는 박완서식 이야기의 힘이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아주 오래된 농담'은 자본주의의 속물성에 대한 비판과 가부장제사회 내 여성현실의 폭로라는, 박완서 문학을 이루는 두 가지 큰 축이 한곳에 결합된 소설이다.
주제는 여전하지만 이야기마다 샘솟는 젊은이 못지 않은 감각, 매섭게 꼬집는듯 하면서도 종내는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우리 일상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애정이 변주된다.
자칭 재벌인 Y건업의 장남 송경호가 암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그것조차도 돈과 권력의 과시를 위한 '기획'으로 생각하는 가족에 의해, 본인은 사인도 모르는 채 진행된다. 송회장은 아들의 장례식을 찍은 비디오를 보면서 어떤 유명 인사가 참석했고, 식이 얼마나 화려하고 성공적으로 치러졌나를 과시한다.
아들에게 병명을 숨긴 것도 그의 여린 마음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유산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화자인 심영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는 가부장제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쓰디쓴 에피소드이다.
이미 예쁜 두 딸을 둔 영빈의 아내 수경은 아들에 대한 욕심으로 계획된 출산을 준비한다. 남편의 친구인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가 출산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어 두번 딸아이를 유산시키고 아들을 임신하는 수경의 노력은 아들을 낳아야만 '당당한 아내의 자리'가 확보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
한편 아내의 행동에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장삿속의 무참한 야합을 발견한 영빈은 초등학교 동창인 현금과 불륜관계를 맺는다. 이혼녀인 현금은 그와의 만남에서 처음으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열망을 품지만 자신이 불임임을 알게 된다.
작가는 이처럼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동전의 양면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는 고귀한 현상마저도 돈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악몽으로 뒤틀리고 마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그의 전언은 폭포처럼 쏟아지는 생동감 넘치는 서술과 재기 넘치는 대화 속에 녹아있다.
그는 "재미와 뼈대가 함께 있는 소설을 쓰는 것이 내 소원"이라며 "아직도 소설 쓰는 고통을 즐길 만한 기운은 남아있으니 언젠가는 소원 성취할 날도 있으리라 믿는다"라는 겸사로 새 작품을 낸 소회를 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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