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詩.기생에 대한 詩 모은 '기생시집'"시기(詩妓)의 것에는 감정을 거짓한 흔적이 없습니다. 만일 공자의 '사무사(思無邪)'라는 시에 대한 평이 옳은 말씀이라면 이 점에서 아낙네들의 노래는 낙제이고 기생의 시는 급제외다."
김소월의 스승이었던 김억(金億) 은 '조선여류한시선집 꽃다발'을 찬하며 기생들의 시를 이처럼 높이 평가했다.
신분에서 비롯된 생의 불행, 자신들을 희롱의 대상으로 삼는 남성으로 인한 외로움과 그 반면의 그리움을 가감없이 토로한 그들의 시야말로 위선이 없다는 것이다. 소월의 '산유화'등 민요조 시의 애절한 가락은 바로 기생시의 특성과 일치하는 것으로, 기생시는 현대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문정희(53) 시인이 엮은 '기생시집'(해냄 발행)은 고려ㆍ조선시대 기생들의 시 70여 수와,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이규보 이율곡 정약용 등 남성 대학자들이 기생에 관해 쓴 시 50여 수를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조선 선조시대 전북 부안의 기생이었던 매창(梅窓)의 시조는 구곡간장을 끊는듯한 절창이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더라.' 고려시대 기생 동인홍(動人紅)의 시 '자서(自敍)'는 기생의 마음을 보여주는 최고(最古)의 시편이다. '기생과 양갓집 규수 사이에/ 묻노니 그 마음 다를 게 있나요/ 슬프다, 송백같이 굳은 절개로/ 두 마음 안먹고자 맹세한다오/ 치마를 벗으면서 술을 팔고/ 고운 손 흔들어 님을 부르네.'
문씨는 "이익 선생이 '성호사설'에서 '독서와 강의는 장부의 일이니 부인이 이를 힘쓰면 폐해가 무궁하리라' 했던 시대에 맞서 인간 본성의 시를 가장 탁월하게 읊었던 이들은 바로 기생"이라고 말했다.
그는 "500여 년이나 지속됐던 이 '특수한 예술가'들의 존재는 세계문학사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기생시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이뤄져 우리 문학사의 소중한 페이지에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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