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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생물학적 모순, 호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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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생물학적 모순, 호주제

입력
2000.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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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초 나는 EBS의 세상보기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세기가 밝았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남녀평등의 문제를 생물학적으로 재분석해보았다. 여섯 번에 걸친 강의에서 나는 인간사회의 남녀 불평등이 얼마나 근거 없는 일인가를 과학의 눈으로 다시 한번 짚어보았다.그 시리즈의 맨 마지막 강의에서 나는 조만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질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예측과 방안들을 제시한 바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호주제의 모순이었다.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의 위헌소송이 11월초로 예정되어 있다 하여 나도 그 과학적 당위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려 한다.

호주제가 만일 부계로 이어지는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라면 생물학적으로 뒷받침하기 대단히 어렵다. 자연계의 그 어느 동물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부계란 찾을 수 없다. 우리와 가장 진화적으로 가까운 동물인 침팬지와 보노보 사회에서 암수 중 누가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는가 물으면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서로가 만나 행하는 의례행위를 보면 수컷이 100%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 싸움에서도 수컷이 80% 우위에 있지만, 누가 궁극적으로 더 좋은 먹이를 취하느냐 또는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느냐를 물으면 80%는 암컷이라는 답이다. 누구를 통해 혈통이 이어지는가를 물으면 당연히 암컷일 수밖에 없다.

생명의 주체성을 남성에게 붙잡아두려는 초창기 남성 과학자들의 억지스런 노력이 정자 속에 작은 아기가 들어앉아 있다가 영양분을 제공해줄 난자를 만나면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수치스런 학설을 낳기도 했다.

만일 정자 속에 작은 인간이 들어 있다면 그 인간의 정자 속에는 또 작은 인간이 들어 있어야 하고 또 그 정자 속에 더 작은 인간이 들어 있어야 하고…. 생명의 모습이 마치 인형 안에 또 인형이 들어 있는 러시아 인형과도 같아야 할 것이다.

정자는 남성의 DNA를 난자에게 운반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값싸게 만든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퀵서비스에 유전물질의 운반을 맡긴 격이다. 그에 비하면 난자는 여성의 DNA는 물론 성장에 필요한 기구들을 다 갖추고 있다.

그 기구들 중의 하나가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토콘드리아라는 기관인데 그들은 핵 속에 들어 있는 DNA와 별도로 독자적인 DNA를 가지고 있다. 오로지 모계로만 전달되는 DNA이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우리 모두의 조상이 저 아프리카 초원에 누워 계시던 루시(Lucy)라는 이름의 할머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혈통을 따지자면 이브가 먼저 만들어진 후 그의 갈비뼈로 아담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호주제는 시대에 비해 너무나 낡은 옷이라 이젠 벗어야 한다. 우선 인본주의적 차원에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왜 다 같은 인간인데 여성들에게는 그런 권리가 주어지지 말아야 하는가. 역사적으로도 그리 오랜 관습이 아니다. 지나치게 유교적이었던 조선시대가 만들어낸 악습에 불과하다. 가부장제로 억압받는 것은 여성만이 아니다.

구시대의 멍에를 벗고 진정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려면 남성 스스로가 자진해서 버려야 할 구습이다.

최재천 서울대교수 생명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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