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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칼럼] "저, 자원봉사 할 수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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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칼럼] "저, 자원봉사 할 수 없나요"

입력
2000.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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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는 1998년 월드컵이 끝난 뒤 이 행사 성공의 80%는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의 몫이라는 분석자료를 냈다. 프랑스 월드컵에는 안내, 통역, 운전, 질서요원에서부터 회계, 전산관리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활약했다.이들은 식사나 교통비를 제외하곤 일체의 급료를 받지 않았지만 모두 관련분야에 종사하다가 은퇴한 사람이거나 경력자들이라 담당 공무원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서비스의 질도 높았다고 한다. 우수하고 열성적인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프랑스는 적은 비용으로 가장 성공적인 월드컵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호주 시드니올림픽의 경우에도 1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 훌륭한 대회를 치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지난달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선진8개국 정상회의에도 지역주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맹활약했다.

20~21일 열린 서울 아셈정상회의에는 15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회의 진행을 도왔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국제관계 분야를 공부하는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들이어서 순수한 의미의 자원봉사자는 아닌 셈이다.

주최측은 아셈정상회의가 국제박람회 같은 일반인이 참여하는 행사가 아니라 세계의 정상들이 참여하는 중요한 회의라 일정수준의 어학능력과 전문성이 필요해 순수한 의미의 자원봉사자를 선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자원봉사 활동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실례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원봉사인력 자원은 거의 무궁무진하다. 전문직에 종사하다 은퇴한 사람,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 전문지식은 없어도 노년에 무엇인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싶어하는 사람, 자녀를 다 키우고 시간 여유가 있어 보람 있는 일을 찾는 고학력 주부 등 인적 자원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고학력국가인 우리 나라는 자원봉사인력에 관한 한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원봉사인력이 필요한 곳 또한 늘려 있다. 관광지나 터미널, 시장 등에서의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안내에서부터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의 노약자 안내와 시설관리, 병원이나 사회수용시설 등에서의 봉사활동은 물론 아시안게임, 월드컵, 올림픽 같은 국제경기, 아셈과 같은 각종 국제행사에서도 자원봉사자는 얼마든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막대한 국가예산을 절약하고 풍부한 유휴 고급인력을 활용하면서 참여자들에겐 삶의 보람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자원봉사활동의 중요성을 간파한 선진국에선 자원봉사인력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개념으로 파악, 효율적인 자원봉사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선진국대열에 들어섰다는 우리나라는 자원봉사활동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풍부한 인적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 국가의 귀중한 자산이 사장되고 있는 것이다. 20세 이상 성인의 사회봉사활동 참가율이 14.2%인 우리나라는 미국(50%)이나 유럽국가(30%이상)에 비해서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지만 최근 전문분야의 은퇴인력과 고학력 주부가 늘어나면서 자원봉사활동 참여 희망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수요도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예산부족, 인력부족 타령만 할뿐 풍부한 유휴 고급인력을 자원봉사인력으로 활용하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데 눈을 돌리지 않고 있다. 자원봉사단체협의회와 일부 국회의원들이 관련 지원법의 제정을 추진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국가예산을 획기적으로 절약할 수 있고, 우수한 전문인력을 활용할 수 있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면서 참여자들에겐 삶의 보람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을 정부나 국회가 왜 외면하고 있는지 납득할 수 없다. 자원봉사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여느 국가정책 못지 않게 중요하다. 효율적인 자원봉사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선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편집국 부국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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