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바레인과의 어웨이 경기 때의 일이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고종수를 대표로 뽑았다가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제외시키는 해프닝을 연출했다.무책임하고 형식적인 기술위원회의 현주소를 명확히 보여준 사례였다. 대표팀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는 기술위원회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그러나 우리 기술위원들이 선수들을 점검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감독이 선발한 명단을 추인해주는 기능외에는 어떤 사안도 창의적이거나 능동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기술위원의 중요성은 최근 강영철씨의 사례로 입증됐다. 일본 J리그에 진출한 한국선수들의 경기력을 점검하기 위해 대한축구협회가 지난해 기술위원으로 선임한 재일동포 강씨는 주목할 만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시드니올림픽서 모로코와 칠레의 경기를 완벽하게 분석, 2승의 밑바탕이 됐다. 또 이번 아시안컵서는 이란의 공격루트와 수비의 약점을 완벽하게 분석한 비디오 테이프를 레바논으로 긴급 공수, 한국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의 비디오분석은 너무 정교하고 알기 쉽도록 되어 있어 한국팀의 전술수립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그러나 우리 기술위원들의 경우 그러한 능력은 둘째치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축구계의 대체적인 여론이다. 더 큰 문제는 기술위원회가 수준 미달의 대표선수를 양산하는 '공장'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비쇼베츠 감독(우크라이나)의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는 무려 68명이 태극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대표팀에 뽑히지 않으면 선수도 아니라는 말이 나돌았는데 이들 중 스타급으로 성장한 선수는 이운재 최성용 이민성 윤정환 고종수 최용수 이기형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올 시드니올림픽 대표팀의 경우도 마찬가지. 허정무 감독은 비쇼베츠때와 비슷하게 69명을 선발했다.
이런 현상은 국가대표팀도 마찬가지여서 97년 박종환 감독은 1년간 50명이 넘는 선수를 뽑았고 98년 월드컵팀의 차범근 감독때도 비슷했다.
선수층이 두터운 유럽에서도 이렇게 많은 선수들을 테스트하지 않는다. 94년 월드컵 때 브라질의 페레이라 감독의 경우는 90여명을 테스트했는데 그나마 공식경기에 나선 선수는 30명도 안 됐다.
우리가 대표선수를 양산하는 이유는 바로 기술위원들이 선수를 모르기때문이다. 또 무작정 뽑아놓고 테스트해보자는 식의 무계획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기술위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항상 대표선수들의 기량을 엄밀히 체크해야 한다. 또 강영철씨 처럼 전술ㆍ전략 분석능력이 있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2002년 월드컵서 대표팀의 성패는 결국 기술위원회의 역할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승근기자 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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