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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어느 장애인의 죽음

입력
2000.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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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장애인이 생활고로 죽었다. 18일 충남 천안에서 단칸방에 세 들어 홀로 살던 40대 지체장애인이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해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장례는 치르지 말라는 내용도 들어있었으나, 장례를 치를 형편도 못 되는 살림이었다. 아들이 둘 있지만 이제 열 일곱 살인 장남은 돈이 없어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중국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하며 따로 살고 있다.

국가가 모든 국민의 최저생계를 책임진다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자마자 가난한 사람이 그 제도 때문에 죽은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생활보호 대상자였던 그는 지금까지 월 21만원씩을 보조 받아 그럭저럭 살아왔으나, 새 제도 시행으로 보조금이 월 6만2,000원으로 줄어 연명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낙담했다 한다.

생계보조금이 깎인 이유는 중국 집에서 일하는 아들이 월 50만원의 수입이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에도 못 다니는 미성년자가 자신의 용돈조달을 목적으로 버는 것을 가족생계비로 치부해 보조금을 그렇게 깎았으니 그는 새 제도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며칠 뒤 서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역시 월 21만원씩 생계보조금을 받던 장애인이, 아내의 파출부 수입을 이유로 7만원 밖에 Xm 받게 되자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그는 모자라는 생활비를 벌어 보려고 동사무소에 찾아가 취로사업을 지원 했으나 간질증세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분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광주에 사는 한 장애인은 “10월부터 기초생활보장제가 시행된다는 기사를 읽고 눈물을 흘리며 좋아했는데, 장애인카드를 반납하라고 하니 이런 제도라면 없는 편이 낫다”고 말하고 있다. 의료 등에 혜택이 큰 카드를 회수당하면 더 손해라는 것이다.

정부는 이 제도 시행을 앞두고 참 많은 생색을 냈다. 2000년 10월이 되면 아무리 가난한 사람들도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93만원의 생계비를 받게 된다고 큰 소리로 선전해 왔다. 국민은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그것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복지국가'란 말을 자주 입에 올렸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데, 그 많은 돈을 공짜로 준다니 정말 좋은 세상이 오는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땀 흘려 노동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면서 돈을 너무 많이 주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잠시 꿈에 부풀게 했던 남가일몽(南柯一夢) 같은 것이었다. 제도 시행을 목전에 둔 지난 9월 정부가 발표한 수급기준을 보고야 사람들은 선전과 실제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재산도 수입도 없고, 가족 가운데 근로능력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경우라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7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조건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지않은 것이 현실이고 보면, 그것은 행정가들 서류 속에만 있는 혜택일 수 밖에 없다. 혼자 살던 장애인이 자살을 택한 사건이 이 제도의 허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꼭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이 못 받고, 받아서 안될 사람이 받는 적정성 문제도 있다. 정부는 86만여 가구 194만여 명을 대상으로 5개월간의 조사 끝에 150만여 명을 보장 대상자로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생보자중 수입이 기준 이상인 부적격자 27만여명(18%)을 탈락시켰다.

생보자 혜택을 받다가 기초생활보장 대상에서 탈락된 사람이 27만 명이 넘는다는 것은 새로 선정된 사람들 중에도 부적격자가 적지 않으리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이 일선 사회복지 전담직원 4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3.6%가 “대상자 선정과정에서 기초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또는 담당공무원으로부터 압력과 청탁을 받았거나, 그런 말을 들었다”고 응답했다. 조작된 극빈자가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개연성이 여기서도 발견된다.

이 제도마저 불평 불만의 대상이 되면 정말 큰일이다. 새 제도가 진정한 서민보호 장치가 되려면 억울한 사람과 뻔뻔한 사람을 찾아내 부단히 제도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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