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애착은 라디오 DJ"진행자에게 붙이는 가장 보편적인 평가는 `무난하다'일 것이다. 별로 흠잡을 데는 없지만 이렇다할 특징도 없다는 의미다. 배철수(47)는 어쩌면 `무난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진행자이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는 `배칠수의 음악텐트'(www.letsmusic.com)라는 인터넷방송 프로그램으로 패러디되기도 했다.
그는 요즘 부쩍 바빠졌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배철수의 음악캠프'(MBC FM 91.9 MHz, 매일 오후 6시)외에도 10월부터 페미니즘토크쇼 `삼색토크-여자'(EBS 금요일 오후 9시)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장발과 턱수염으로 한때 텔레비전의 기피 인물로 꼽혔던 그에게 TV출연, 그것도 페미니즘 프로그램은 사실 좀 의외였다.
“TV는 옷도 챙겨 입어야 하고…그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옛날보단 많이 편해졌죠. 뭐 좀 지저분하게 나와도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하고들 생각하니까요.”그렇지만 그의 솔직하고 유연한 진행방식은 화장이나 하이힐 등 일상적 소재에서 여성성을 찾는 이 프로그램에 썩 잘 어울린다.
“ `페미니스트'랄 것은 없어도 대한민국 보통 남자보다는 조금 생각이 열린 편이죠.”그 역시 일하는 아내(MBC FM 박혜영 PD)를 둔 맞벌이부부다. 그는 23일부터 `만화열전-삼국지'도 시작했다. “내레이션돐? 재미있어요. 섭외 들어오면 거절 안하는 일 중 하나죠.”
TV 진행자에 내레이션에, 직역이 아예`방송인'으로 넓어진 듯 하지만 무엇보다 사랑하는 일은 라디오 DJ다. “외국 나갈 때 공항에서 직업란에 망설임없이`DJ'라고 씁니다.” 올해로 10년이 된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대한민국 팝의 창구역할을 한다.
대개 하루 평균 내보내는 음악이 15~20곡에 달한다. 그만큼 쓸데없는 농담 대신 음악 자체에 충실한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시간이 안 되면 녹음까지 해서 듣는 골수 팬도 많다. “솔직히 팝이 쇠퇴한 덕을 봤죠. 거의 유일하게 남은 팝 전문 프로그램이니까요.”
이 프로그램은 오프닝 멘트 외에는 아예 대본이 없다. 그는 기름을 빼듯,공치사나 아부를 빼고 담백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쓸데없는 존칭이 너무 많아요. 기사식당 하면 되지 뭐 `기사님 식당'이랄 것까지 있습니까”하는 식이다.
때로 독선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의 철학은 분명하다. “라디오 DJ가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퍼스낼리티와 주관이 있어야 하니까요. 정 싫으면 딴 방송 들으면 되죠.” 그래서 그는 젊다. 지천명(知天明)을 바라보는 나이에 `철수오빠'`형님'소리를 듣는 것은 그런 꼿꼿한 태도 때문이다.
그가 보는 DJ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다양한 경험이다. “실연당한 사연을 읽어줄 때 경험없는 사람이 `아 예, 슬프겠군요 좀 지나면 나아지겠죠'라고 건성으로 말하는 것과 아파본 사람이 `아, 가슴이 찢어지죠. 근데 시간 지나면 아물어 붙더라구요. 무슨 본드 같은 게 나오는 건가?'라고 말하는, 그런 차이죠.”
80년대를 주도했던 록밴드 `송골매'의 멤버 배철수. 그러기에 음악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자신의 선곡과 가수에 대한 코멘트에 부끄러움이 없다. “음악 듣는 것도 미술 감상법처럼 일종의 훈련이죠. 연주도 해보고, 많이 듣고 해서…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안목이 생겨요. 그래서 옛날엔 록만 고집했지만 지금은 림프 비즈킷(하드코어), 그린데이(평크), 에미넴(랩) 등 일단 `잘한다'고 생각이 들면 다 좋아해요.”
하지만 음악활동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다. “솔직히 서푼짜리 재주로 그만큼 했으면 됐죠. 게다가 송골매 후기의 3~4년동안은 나이트클럽에 회사 출근하듯 매일 나가서 죽어라 댄스곡만 연주했어요. 그렇게 안하면 밴드 유지하기가 불가능했으니까요”
그때부터 음악인으로 사는 데 환멸을 느꼈고 그러던 차에 DJ를 맡을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처음 방송 일을 시작했을 때는 기타줄 처음 잡을 때처럼 기쁘고 설??어요"지금도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가 하루중 가장 설레인다고 한다.
어느새 선곡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스튜디오로 들어가며, 오늘도 그의 멘트 하나하나를 곱씹어 들을 골수팬들에게 한 마디 남긴다. “그런데 너무들 집착하진 말았으면 좋겠어요. 뭐 게티스버그연설도 아닌데 녹음까지…헤헤, 그냥 물 마시듯, 밥 먹듯 그렇게 방송을 들으면 되죠.”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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