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적응이 잘 안돼요."베이징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만나는 한국인에게 흔히 듣는 말이다. 말이 안 통해서, 음식이 안 맞아서, 중국사람들이 너무 무뚝뚝해서, 관공서 일이 터무니없이 까다로워서 등등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이제 막 중국에 온 사람은 물론, 수년을 산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여행, 유학, 일 등으로 10년 넘게 외국생활을 하며 발견한 한국인의 특징이 하나 있다. 유난히 다른 문화에 적응을 못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사회의 국제화를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요소라는 생각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국제 경영개발 연구소(IMD)조사가 나의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준다. 이 곳에서는 해마다 여러 부문으로 국가의 국제경쟁력을 평가하고 있는데, 1998년 국제화부문에서 조사 대상국 46국 중 우리 나라는 46위, 꼴찌를 차지했다.
이 조사의 지표는 이렇다. 첫째는 정보의 수집과 운용력. 이거라면 꼴찌는 커녕 오히려 상위권이여야 한다. 이미 인터넷 사용인구가 1,000만명을 넘었으니 말이다. 다음은 영어를 포함한 국제어 구사능력. 이것 역시 읽기, 쓰기까지 포함한다면 우리가 그렇게까지 떨어지는 편은 아니다.
문제는 바로 세 번째 항목이었다. 이문화 적응력. 이것 때문에 우리가 ?m 찌를 면하지 못한 것이다. 이문화 적응력이란 한마디로 서로 다른 문화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과 능력이다.
한국인이 이문화 적응력이 약한데는 몇 가지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단일민족으로 다양한 문화의 경험이 부족한데다 오랫동안 동질성을 강조하다보니 다른 문화를 열린 마음로 대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학교나 가정에서 이문화 교육이나 훈련이 거의 없어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눈높이 관계를 갖는데 서툴 수밖에 없다.
이런 이문화 적응장애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으면 안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창피하거나 불편함을 넘어서 거의 치명적이다.
이문화 적응을 짧은 시간내에 교육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가 여행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여행지에서 보여주는 어른들의 행동은 대단히 비교육적이다.
잘 사는 나라에 가면 주눅이 들어 마땅히 비판해야 할 것까지 멋있다고 하면서 못 사는 나라에 가면 손으로 밥을 먹어 비위생적이라느니, 화장실 뒷 처리를 물로 해서 더럽다느니, 경제가 우리보다 20년은 뒤졌다느니 하면서 현지인들을 깔보고 업신여긴다.
문화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른가만을 분석하며, 오로지 경제력으로 우열을 따지는 일은 아이들의 이문화 적응력 향상을 위한다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베이징에 살고 있는 한국 중(고등학생들의 경우도 이문화 적응과는 거리가 멀다. 외국인 전용 아파트에서 살고, 국제학교에 다니고, 여행을 갈 때도 비행기를 타거나 전세차를 빌리기 때문에 중국인들과 만나 사귈 기회가 거의 없다.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부모의 생각이 아이들을 아예 중국문화와 접촉할 수 에는 '무균실'에 넣은 것 같아 몹시 안타깝다. 이 학생들이 중국에 적응 못하고 이구동성으로 하루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국제화란 통신망과 교통의 발달로 이미 울타리가 없어진 지구촌에서, 서로 다른 이웃들과 충돌을 최소화하며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문화 적응력이 국제화수준의 중요지표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이웃을 눈높이로 대하지 않는다면 그들 역시 우리를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이웃과 적응을 못하고 살다가는 조만간에 친구는 한 명도 없고 몽땅 적으로 둘러 쌓일 것이 불을 보듯이 뻔하다. 지금 우리에게 이문화 적응력 교육이 컴퓨터 교육, 외국어 교육보다 훨씬 시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비야·여행가 난민구호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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