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진정한 통일의 길이 남북한의 상호신뢰와 이해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통일의 과정이 양 정권의 정치적 목적과 경제적 동기에 의하여 진행되고 마는 경우, 이해관계의 충돌에 따라 원점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언제든지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역사학계의 임무는 오랜 민족사의 공통적 경험을 확인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는 통일을 향한 노력이 어떤 일이 있어도 되돌려 질 수 없도록 하는 데 있다.
남북한의 역사학계가 상호교류를 해 나가는 데는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역사인식과 서술은 물론이고 학계의 모습에서도 서로 다른 점이 많은 것이다. 북한에서는 주체사관에 입각한 집체적 서술방식을 택하고 있어 개별 연구자의 입장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남한의 역사학계는 자신의 학문적 입장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으며 모든 역사학자들을 대표하는 학회가 있는 것도 아닌 실정이어서 북한은 주체가 명확하지만, 남한은 그렇지 못한 어려움이 있다.
앞으로 진행될 남북간의 학술교류가 일방적으로 정부 주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 이벤트성 행사를 치르는데 급급해서 처음부터 비용이 많이 들거나 규모를 크게 시작하여 구체적인 성과도 없이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남북한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들자는 성급한 주장이다.
현재 남북한 역사교과서는 분단현실 속에서 각각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도저히 그 간격을 쉽게 메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북한의 역사학자들이 우선 역사교과서를 각자 통일지향적으로 서술하고 교육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내년부터 실시될 ?제7차 교육과정에서부터 한국근현대사가 필수에서 선택과목으로 위상이 약화한다는 것은 남북분단의 기원과 동질성 회복을 위한 역사교육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 시점에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나아가 검인정 지침이 현행 국정 교과서를 그대로 답습하여 체제우월성을 고취시키고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서술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도 바뀌어야 한다.
이제부터 남북한의 역사학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다양한 역사관에 입각하여 진지한 토론을 거쳐 각자의 역사인식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이 경우 개별 학자나 단체들이 산발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정부가 지원하는 남북학술교류사업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와 사업계획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 안에 여러 역사관련 학회의 협의체가 자율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남북 역사학계가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일, 사료와 연구성과의 교환, 이념적 차이에 따른 제약이 덜한 유적지 공동조사 및 발굴부터 추진해야 할 것이다
주진오
상명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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