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다. 고등 종교가 묘사하는 신의 이야기도 넓은 의미의 신화이기는 하지만,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대체로 인격화한 신이다. 그 신들은 사람과 똑같이 사랑하고 질투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소망하고 좌절한다.그들은 때로 인간 못지 않게 비윤리적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의 신 제우스가 보여주는, 끝 모르는 바람기와 편협함을 생각해 보라. 그들이 사람보다 나은 점은 대단히 힘이 세고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신화는 인간 상상력의 총화다. 그것은 한편으로 문자가 발명되기 전의 역사이기도 하다. 태고의 현실이 이야기의 옷을 입은 것이 신화다. 신화는 원시 문화의 본질적 요소 가운데 하나다. 신화는 옛 사람들의 믿음을 표현하고 강화하고 체계화했다. 신화는 실질적 규범을 제시하며 도덕을 수호하고 관철시켰다.
그러나 신화가 과거 완료형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도 영향을 끼치는, 과거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미래를 지닌 과거다. 신화는 지금도 많은 문학 작품들의 자양분이 되고 있고, 우리들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세계 여러 곳의 신화들이 그 쇄말적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커다란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항해 시대 이후 아메리카와 아시아의 토착 신화를 접하게 된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은 이 낯선 땅의 신화들이 자신들의 신화와 너무나 닮았다는 걸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다른 문화권의 신화들에서 나타나는 이 유사성을 설명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예컨대 인도 같은 소수의 신화 창조 지역에서 신화가 만들어진 뒤 초기 시대의 문화접촉을 통해서 그것이 전세계로 확산되었다고 가정하는 '확산론'이다. 둘째는 신화의 핵심적 요소들은 인간의 보편적 정신을 반영하므로 닮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심리학주의'다.
미국의 신화학자 비얼레인의 '세계의 유사 신화'(현준만 옮김, 세종서적)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신화들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살필 수 있는 입문서다. 저자는 창조 신화, 홍수 신화, 영웅 신화, 사랑 이야기, 저승으로의 여행, 종말론 등 신화를 여러 유형으로 분류한 뒤, 각 유형에 속하는 세계 여러 곳의 신화들을 병렬해 소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 유사성을 실감하게 한다.
책의 뒷부분은 이런 비슷한 신화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여러 이론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는 그 신화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제2부에 있다. 이 책은 육대주의 신화들을 골고루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신화의 모듬회라고 할 만하다. 그 모듬회는 신화라고 하면 단군 신화 말고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만을 떠올리는 우리 독자들의 편식증을 치유해줄 법하다.
편집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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