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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길고 긴 산장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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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길고 긴 산장의 밤

입력
2000.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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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아홉시에 불이 꺼졌다.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산행을 서두르라는 배려일 것이다. 산을 오르느라 고단한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옷을 입은 채 담요 한장으로 깔고 덮고 곤히 잠들었다. 이내 코고는 소리가 들리고, 오래지 않아 여기저서 잠꼬대 소리도 터져 나온다.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 사람들은 불편한 잠자리를 뒤척이며 수십 명이 동시에 쏟아내는 소리공해를 견뎌야 한다. 학교 교실만한 대피소 내부가 군대 내무반처럼 트인 원룸식 공간인데다 정원이 초과된 상황이어서 코골기 경연대회가 벌어진 것 같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더듬더듬 어둠을 헤치고 밖으로 나가 끼리끼리 술을 마시거나 바람을 쐬다가 돌아온 뒤로는 소란이 더욱 심해진다. 꽤 취기가 올라 보이는 사람이 큰 소리를 내자 건너편 침상에서 시끄럽다는 불평이 터져 나오고, 그래도 큰 소리가 이어지자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날아온다.

소리 낸 쪽에서 반응을 보이면 어둠 속에서 패싸움이 날 기세였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은 제발 조용해지기를 빌며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은 멀리 달아나고, 시계가 멎은 듯 밤은 지루했다. 지난 주말 지리산 등반 때 겪은 일이다.

이름 그대로 대피소 시설이니 쾌적한 숙박환경을 바랄 수는 없다. 샤워시설과 안락한 침구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하나로 된4? 공간을 몇 개의 방으로 구획하면 소리공해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오래된 시설이라면 몰라도 최근에 개축한 대피소들도 다 그런 원룸식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측은 대피소 시설이어서 숙박시설 개념을 고려하지 않고 있고 있다면서 구획을 하면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몇 개의 구획을 만든다고 수용인원이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

공단측은 대피소라고 말하지만 등산객들은 누구나 그런 시설을 산장이라고 부르고, 등산지도에도 모두 그렇게 표기돼 있다. 산행 중 조난을 당한 사람을 일시 보호하거나, 산불감시 직원들 숙소로 이용된다고 해서 대피소라고 부른다지만 실제 용도는 99%가 등산객들의 숙소다.

대피소측이 미리 투숙예약을 받는 것도 그런 용도를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다. 겨우 몸 하나 눕힐 공간을 하룻밤 빌리는 비용으로 6천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대피소도 숙박시설이라면 소리공해를 피할 시설만은 꼭 필요하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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