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리경제의 사활이 달린 2차 기업·금융구조조정안을 내놓은 지 한달 정도 지났다. 그런데 벌써 구조조정의 추진에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정부의 계획은 10월중 유동성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한 사업성 평가를 마치기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 평가작업이 은행들의 `봐주기'식 행태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이 경고 공문까지 내놓은 것을 보면 문제가 매우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은행들이 기업구조조정의 기본정신에 역행하는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정부의 정책구조가 초래한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정부는 은행의 2단계 구조조정을 11월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10월중에 은행경영평가를 끝내고 11월에 평가결과에 따른 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은행들은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해서 BIS(국제결제은행)비율이나 수익성 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장기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10월, 11월 당장의 평가시점을 겨냥해서 수치 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입지에 선 은행들이 충당금 추가 축적과 손실처리의 부담으로 평가 점수를 크게 낮추게 될 `부실 퇴출'의 판정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겠는가. 은행들은 `구조적 유동성 문제'로 회생이 ~m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기업이라고 할지라도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하거나 `금융지원으로 회생 가능한' 기업으로 분류하려는 성향을 생존의 차원에서 갖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은행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워크아웃 대상기업들이다. 워크아웃 대상 기업들의 경영행태에 대해서 면밀히 분석해 본다면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여러 가지 상황들이 발견될 것으로 본다.
주채권은행에서 퇴임한 사람들이 그 은행이 관리하는 회사들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경우는 매우 흔한 일이다. 이런 사회적 관행은 기업주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한다. 워크아웃 대상 기업의 대주주들의 관심은 공적자금 투입 은행의 돈을 가능하면 오랫동안 많이 쓰자는데 있기 때문이다.
워크아웃 대상 기업의 대주주, 주채권은행에서 내려보낸 임원들, 그리고 BIS비율 등에 매달려야 하는 은행의 입장이 `파괴적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부 구조가 있는 한 금감원이 내리는 지시는 매우 제한적 효과만을 나타낼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기업 구조조정은 껍데기뿐이거나 또 다시 지연되는 악순환이 지속될 것이다.
때문에 구조조정의 정책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12월말까지로 백과사전처럼 나열되어있는 구조조정의 획일적 시한을 재검토해야한다. 금융, 기업, 공공, 노동 등 4개 부문의 개혁을 동시 병렬식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그 실현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우선순위를 설정하여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잠재부실기업의 정리와 은행의 2단계 구조조정을 10월, 11월중에 동시에 집중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은 수정되어야 한다. 부실기업의 퇴출 작업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은행의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에서 행정편의주의적인 획일적 기준도 보완되어야 한다. 부실퇴출의 판정기준에 있어서 업종별 특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금감원이 제시한 유동성 기준에 추가하여 투자의 회임기간, 업종의 경기순환, 국제경쟁력 차원의 미래 성장가능성 등 산업정책적 기준이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실판정후의 은행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부실판정으로 인한 부담의 차이를 인정해주는 차별화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은행이 원칙대로 퇴출기업을 선정할 수 있다.
모든 정책에는 정교함이 필요하다. 의도가 좋으면 그저 밀어붙이기만 하면 된다는 정책사고는 버려야할 개발독재시대의 유산이다.
김광두ㆍ서강대 경제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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