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의 평양에서의 첫날은 역시 예상과 달리 곧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올브라이트 장관 숙소를 찾아가는 북한식 '깜짝 일정 변경'과 '통큰 영접'으로 진행됐다.올브라이트 장관이 이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사실을 세계 언론들은 일제히 긴급 뉴스로 타전하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 "우리는 통보만 받았다"
오후 3시 올브라이트 장관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찾아온 김 위원장은 “미 국무장관을 만나는 것은 처음으로 정말 기쁘다”고 올브라이트 장관과 힘차게 악수를 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 아름다운 도시에 오게 돼서 정말 기쁘다”고 인사했고, 김 위원장은 다시 “조명록 부위원장이 미국에 갔을 때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게 준비를 잘 해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어 큰 탁자를 마주하고 1시간 이상 환담을 겸한 회담을 가졌다. 이어 김 위원장은 직접 올브라이트 장관을 위한 만찬을 주재했다.
미 국무부 관계자들은 일정 변경과 김 위원장의 숙소 방문 및 만찬 주재에 대해 “우리는 일정이 바뀐 것을 통보만 받았을 뿐”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 앞서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날 오전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예방했으나 참배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수행한 미 국무부 관리는 한국과 한국전 참전 미군용사들의 반발을 의식한 듯 “올브라이트 장관이 김 주석의 시신을 `보았지만' 오래는 아니었다”며 “조 부위원장과의 만남은 약 20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올브라이트 장관은 김 주석의 관 앞에 잠시 섰지만 헌화하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올브라이트 장관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날 예정이었으나 김 국방위원장을 만나게 되면서 이 일정은 취소됐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금수산기념궁전 방문 일정은 북한이 의도적으로 잡은 것 같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 김주석 시신 참관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어 오전 11시께 세계식량계획(WFP)의 지원을 받고 있는 평양시 낭랑구역의 정백2유치원을 방문했다.
운동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어린이들이 노래와 율동으로 환영하는 가운데 도착한 올브라이트 장관은 사무실에서 WFP 관계자들로부터 식량분배 투명성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제사회는 그들이 보내는 식량이 원래의 목적에 맞게 사용되는 것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유치원을 나서다 유치원생들이 앙증맞은 동작으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함께 춤을 추며 어울리기도 했다. 그는 “나는 북한을 방문한 최초의 미 국무장관이자 어린이들과 함께 춤을 춘 최초의 장관”이라고 웃음지으며 “미국으로 돌아가 내 손자들에게 여러분들이 얼마나 놀랍게 춤을 잘 추는지 얘기해주겠다”고 말했다.
▲도착성명등 의전 생략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날 오전 7시 직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 영접나온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등 관계자들과 반갑게 악수한 뒤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검은색 모자에 짙은 파란색 코트 차림의 올브라이트 장관은 전용기에서 내린 후 도착 성명은 발표하지 않았으며 북한측도 무거운 의전절차를 생략했다.
그는 김 부상의 안내를 받으며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과 함께 북한측이 제공한 캐딜락을 타고 미국 대표단 숙소인 백화원초대소로 향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이 전용기에서 내려 순안공항을 빠져나갈 때까지 5분여 동안 북한 기자 20여명이 몰려 취재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평양시가지는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인 탓인지 행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으며 전차도 출근하는 승객들로 붐비는 모습이었다. 마침 트럭을 타고 지나가던 젊은 군인들은 취재진이 탄 버스가 순안공항에서 숙소인 고려호텔로 이동하는 것을 반갑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국무장관 전용기가 평양으로 날아가는 도중에도 일부 실무진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각종 연설 원고를 작성하고 일정을 챙기는 한편 북한측과 연락을 취하느라 꼬박 밤을 새웠다.
전용기의 기종은 보잉757-200으로 네 부분으로 나뉘어 제일 앞에 장관이 타고 그 다음 칸은 탁자와 컴퓨터, 통신장비 등을 갖춘 실무진용이며 셔먼 조정관을 비롯한 고위 참모들에 이어 기자들의 자리는 맨 끝에 배치됐다.
기내에서 한 국무부 관리는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매우 중대한 조치”를 취할 태세를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평양=외신종합ㆍ연합, 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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