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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 구급차보다 급하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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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 구급차보다 급하다구요?

입력
2000.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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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를 하자니 허구한 날 온전치 못한 사람들만 봐야 하고, 법관이 되자니 맨 날 범법자들만 상대해야 하고 말이야.”누군가가 괜히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고 우스개 소리로 한 말이다. 나도 고등학교 때 잠시 아버지의 권유로 법관이 돼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평생 남의 인생에 끼어 들어 이래라 저래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리 신이 나질 않았다. 결코 창조적인 일은 아닐 것 같았다.

그런 내가 요사이 가끔 판사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길 한복판에서 양보는커녕 그 틈을 이용하여 오히려 앞서가려는 차들에 꽉 막혀 애걸복걸하고 있는 구급차를 볼 때가 바로 그런 때다.

판사가 되어 앞을 비켜주지 않는 차를 들이받아버린 구급차 운전기사에게 무죄판결을 내리고 싶다. 구급차에 실려 시간을 다투는 귀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로부터 살 기회를 앗아가 버린 더러운 생명을 제거한 일은 차라리 잘한 일이라고 외치고 싶다.

미국에서 운전을 배워 그런지 나는 길에서 사이렌 소리만 들으면 혼비백산 차를 길가에 세우려 한다. 하지만 옆줄의 차가 비켜주질 않는다. 행여 새치길 당할세라 앞차의 꽁무니에 더 바짝 붙이고 달린다. 내가 빨리 가고 싶어 그러자는 게 아닌데. 구급차에 실린 저 아까운 생명을 구하자? 고 하는 일인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판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내 스스로 그런 반사회적인 얌체들을 처단하는 `더티 해리'가 되고 싶지만 그럴 용기는 없고 해서, 내 대신 그런 일을 용감하게 해치운 범법자라도 보란 듯이 풀어주고 싶은 것뿐이다.

구급차에 실려 있는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 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남이야 죽던 말던 상관없다는 얌체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이 사회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리라는 짧은 생각에 말이다.

개미사회에서는 종종 여러 여왕개미들이 협동하여 나라를 세운다. 그런데 건국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그 여러 여왕 중 하나만 살아남아 진정한 군주로 즉위한다.

드물게 여왕들끼리 물고 뜯으며 권좌를 탈취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일개미들이 한 여왕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모두 숙청해 버린다. 지금껏 연구된 바에 따르면 가장 뚱뚱한 여왕 그래서 가장 오랫동안 알을 낳아줄 여왕을 모시는 걸로 보인다.

그런데 참여한 여왕들이 모두 자식을 낳았기 때문에 이 중에는 자기 딸에게 물려죽는 여왕들이 늘 있게 마련이다. 잘 난 여왕 하나를 지키기 위해 못난 여왕들은 모두 죽어줘야 하는 게 개미들의 사회다.

십 수년 전 싱가포르의 리콴유 수상이 머리가 좋고 능력이 많은 사람들만 자식을 갖도록 하자는 다분히 우생학적인 법안을 통과시키려다 국민들의 엄청난 반대에 부닥쳐 포기한 적이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사회적 유용가치로 판단하는 일은 결코 옳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생존의 권리를 지닌다. 필요한 인간이건 쓸모 없는 인간이건 간에. 나도 안다. 그렇지만 절절매는 구급차를 볼 때마다 울화가 치미는 걸 어찌하랴.

요즘 어느 구청 직책 들이 1일 시각장애 체험행사를 벌인다고 한다. 1일 구급차운전 체험행사도 해봤으면 좋겠다. 누구나 한번쯤 구급차안에서 세상을 내다볼 필요가 있다.

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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