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여행작가 생활을 시작한 지 거의 1년이 되어 간다. 시골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늘 느껴는 것은 마을 사람들의 따스함이다.지난달 추석 전날에 전남 해남군 이진(梨津)이라는 자연 마을을 찾아갔다. 지금은 보잘것없는 한촌이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한양에서 내려오는 삼남대로(三南大路)라는 옛 국도의 종점이었으며, 제주도로 건너갈 길손은 여기서 돛단배를 타야만 했다.
성벽으로 둘러 쌓인 마을을 북문에서 들어가 성벽을 따라 올라가니 마당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는 집이 보였다. 나와 아내는 대문 앞을 그냥 지나가려다가 집 안에서 나오는 `어이!'하는 외침과 손짓에 잡히고 말았다.
우린 친척도 아니고 아는 사이도 아닌데도 마치 다정한 옛친구처럼 소주잔을 돌리고 추석을 위해서 만든 음식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었다. 내가 일본인이라고 하자 `자네 사시미(회) 좋아하지?' 하면서 접시에 삼치회를 듬뿍 담아서 권해 주셨다.
시골길을 계속 걷다 보면 간혹 옆에 서는 차들이 있다. 자가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트럭 아저씨다. 지방 나름의 사투리로 `타고 가라'고 손짓을 해 준다. 도보여행이 목적인 우리는 웃으며 사양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흐뭇했다.
경북 선산 낙동강변을 다니던 어느 날은? 밥을 한 끼도 사 먹지 않았다. 아침은 슈퍼 아줌마가, 점심은 논일하던 아저씨가 자기 집에서, 저녁은 버스 기사가 터미널 식당에서 거저 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여행한 적이 있는 일본인은 한국인이 `무뚝뚝하다' `불친절하다' `제멋대로다' 등 악평을 할 때가 허다하다. 그러나 일본인 관광객의 대부분이 서울 부산과 같은 대도시만 다닌다.
대도시는 조잡하고, 붐비고 바쁘고 정신이 없는 거리 시스템이 `친절의 전통'을 사라지게 한다고 생각한다. 무뚝뚝하게 사람 대하는 버스표 판매대 아저씨도 시골에 있었다면 오가는 길손에 호의를 베풀어주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의 시골 분들의 웃음이 좋다. 낯선 외지인이에게 보여주는 여유로운 표정이 우리에게 여유를 준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얼굴'인 서울에서 그것이 찾기 어려운 것이 안타깝다. 서울을 찾아오는 일본인 친구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한국인의 참 얼굴을 보려면 농촌에 가야한다고.
도도로키 히로시
서울대 지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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