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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국형 벤처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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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국형 벤처의 몰락"

입력
2000.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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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상황이었다면 우리도 그랬을 거요.”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사장(33)이 600여억원 불법대출 사실이 금감원 조사로 밝혀진 21일 몇몇 벤처인은 “결과적으로 비난받을 짓”이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정사장을 이해한다는 입장이었다.

계열 금융사의 돈으로 내부 거래를 일삼아 재벌 뺨치는 구태를 보였다는 비난의 외피 속에는 “우리 벤처 토양에선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동정심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일부 벤처인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는 올해 초부터 사회문제로 부각됐지만 대개는 `신(新)졸부층'에 대한 시샘 탓에 실상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주가 조작과 허위 외자유치 사실 유포, 차명계좌를 통한 돈놀이 등 최근 벤처기업의 잇따른 일탈은 벌써 한국형 벤처의 한계가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하는 절망감마저 들게 한다.

특히 정사장은 수백억원의 자금으로도 부도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벤처업계에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더구나 IT(정보통신) 벤처 중에는 올들어 무리하게 금융사를 설립한 기업이 많아 테헤란밸리에는 제2, 제3의 디지탈라인이 조만간 등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양식있는 벤처인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변변한 기술 하나없이 투자자들을 현혹해 세운 모래성이 무너지는 과정”이라며 “돈으로 흥한 한국형 벤처 몰락의 신호탄”이라고 혀를 차고 있다.

하지만 기존 모래성을 튼튼하다고 우기거나 심지어 새로운 모래성을 세우려는 벤처인은 지금도 적지 않다. M&A나 코스닥 등록요건 완화 등을 요구하기 전에 기술개발이 투자유치보다 선행한다는 벤처의 순리를 먼저 지켜야 우리 벤처의 재도약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상연기자 인터넷부

kubr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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