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대 소설집 '떨림'"당시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주신 그 모든 가치, 그 모든 아름다움의 정점에 서 있었고, 당연히 그 결과는 무위(無爲)였다.” 그 정점은 어디인가. 소설가 심상대(40)씨에게는 바로 성애(性愛)의 끝이다. 그의 네번째 소설집 `떨림'(문학동네 발행)은 우리 시대 성애의 의미를 그 막다른 지점에까지 탐구하려 한 적나라한 기록이다.
8편의 연작소설은 `나'와 정사를 나눈 여인들과의 추억에 대한 회고담 형식으로 되어있다. 20대 청년이 어린 두 자매를 봄날의 딸기처럼 따버리고 마는 `딸기', 이혼남인 주인공과 남편 있는 여자의 전형적인 모텔 연애담인 `피크닉', 서른아홉의 남자와 예순넷의 여자의 연애 전말기인 `베개' 등등.
심씨는 소설집에서 마치 스스로의 체험인 것 같은 일인칭 진술로 끔직할만큼 천연덕스럽게 다종다양한 성애담을 펼쳐놓고 있다. “아아 질투의 화신인 세월은 내게서 그 아름다운 여자들을 다 빼앗아가버리고, 단지 색 바랜 몇 점의 추억과, 밤새 자판을 두들겨대야만 하는 가련하고 하찮은 소설가 한 사람을 내 몫으로 남겨두었다.”
문예지에 한편 한편 발표될 때마다 그 표현의 수위로 화제가 됐던 작품들이다. 그러나 심씨의 소설을 포르노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은 그의 미학적 성취이다. 정평 있는 작가의 미문과 유?머러스한 재담, 아슬아슬한 고비마다에서 우리 시대 섹스의 현상을 고발하고 그 의미를 질문하는 작가의 문장에서 `허황한 섹스는 한없는 무위(無爲)에 다름아니다'는 그의 전언을 엿보게 된다.
“인간에게 드라마를 가져다주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성이다. 섹스는 존재의 불완전성을 채우고 극복하고자 하는 개체의 슬픈 몸부림이다. 그러니 섹스만한 인간의 드라마가 어디 있는가. 그 극한을 탐구해보고 싶었다”라며 작가는 묘한 소설집을 묶은 이유를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칫 자신의 작품이 `성체험소설' 정도로 치부되지 않을까 두렵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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