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제 12회 서울시민대상 수상자/ 본상 신영철 外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제 12회 서울시민대상 수상자/ 본상 신영철 外

입력
2000.10.22 00:00
0 0

■대상 서울통신기술㈜ 사회봉사단연 매출 1,800억원에 서울 본사(강동구 성내동)를 비롯, 부산 대구 등 4개 도시에 지사를 두고 있는 정보통신 회선설비 전문기업. 1993년 회사설립 후 알짜 정보통신기업으로 성장한 서울통신기술㈜(대표 장효림)의 외형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사회봉사단㈜'이라는 사명(社名)이 더 어울린다. 930명 전직원이 빠짐없이 사회봉사단원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월 셋째 주 금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이 회사 사무실의 직원 수가 `급감'한다. 이 날은 회사측에서 사회봉사단의 활동을 돕기 위해 지정한 자원봉사의 날. 본사와 4개 지사에서 각각 20여명씩 총 100여명의 직원이 지역 양로원이나 고아원, 장애인수용소 등을 찾아 그들의 손발을 대신한다.

시립노약원과 암사재활원, 시은보육원, 둥지청소년의 집 등을 방문해 수용자들을 씻기고 식사준비와 청소를 해주고 청소년들의 학습지도도 돕고 있다. 또 고아원에 갈 때면 남녀단원들이 수용 아동들과 함께 놀이시설 및 문화센터 등을 견학해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대역도 도맡고 있다.

“봉사활동에는 임원과 간부, 평 직원이 따로 없습니다. 강제성이 전혀 없고 회사 측에서 봉사활동에 대한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는 데도 궂은 일을 마다 않고 참여하는 직원들을 보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95년 봉사단 발족 때부터 산파역을 담당, 봉사단 부단장을 맡고 있는 정우석(鄭禹錫ㆍ39) 설계파트과장은 은근히 `사회봉사단㈜'을 추켜세웠다.

봉사단 운영은 전적으로 단원들의 회비를 통해 이뤄진다. 매월 3,000~3만원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내게 된다.

모아진 성금은 직접 방문이 어려운 수용시설에 보내지거나 해당 관청이 추천한 소년소녀가장의 장학금으로 지급되고 있다. 시작 때만해도 얼마 되지않던 모금액이 지금은 연 5,000만원을 넘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사회봉사단의 활동이 주변에 알려지자 지난 7월에는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고 이번에는 서울시민 대상을 수상하게 됐다.

봉사단은 이번 대상으로 받는 1,000만원의 상금도 전액 봉사성금으로 쓰기로 했다. 이웃사랑이 갈수록 메말라 가고 있지만 서울통신기술㈜은 예외다. 사회봉사단원은 그 `예외'가 더 이상 예외가 아닌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사랑과 정을 전달해줄 곳을 찾고 있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본상 신영철…'사랑의 무료이발'

“봉사는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거예요. 오히려 얻는 것이 더 많은걸요.”

30년동안 무려 5만여명의 머리를 무료로 깎아준 `사랑의 이발사' 신영철(申永哲ㆍ51)씨는 서울시민대상 본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좋아 기쁜 마음으로 해온 일에 대해 상을 주겠다는 것이 의아스럽다는 표정이다.

신씨가 이발 봉사를 시작한 것은 1970년. 전남 무안에서 상경, 4년만에 이용사 면허를 딴 뒤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작은 이발소를 열었을 때였다.

이가 득실득실거리는 지저분한 머리의 아이들을 보고 쫓아가 본 곳이 다름아닌 경희고아원. 이때부터 매월 넷째주 일요일마다 이곳에서 이발 봉사를 했고, 이후 영락보건원과 혜심원으로도 봉사를 나갔다.

88년부터 돈이 없어 `장발'이기 일쑤인 노인들을 위해 탑골공원에서도 이발 봉사를 시작했다. 5년전부터는 탑골공원 대신 매월 둘째주 일요일엔 중구 신당동 노인정을 찾고 있다.

신씨의 선행은 이발 봉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시각 장애 소년ㆍ소녀들을 10년이상 도와왔고 중증장애인 시설도 후원해왔지만 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해왔다.

신씨는 퇴폐이발소가 아니면 영업이 안되는 현실이 싫어 요즘은 이발소 경영 대신 롯데월드 직원이용실에서 일하고 있다. 한달수입은 고작 100만원을 턱걸이하는 수준.

그러나 신씨는 “꼭 먹고 살 만해야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몸이 허락하는 한 머리를 깎을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본상 오진권…불우노인 경로잔치만 50여차례

“유한양행 설립자인 고(故) 유일한 선생처럼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기업가가 되고 싶습니다.”

한식전문점 체인업체인 ㈜놀부 창업자 오진권(吳振權ㆍ49ㆍ서울 서초구 방배동) 대표. 제12회 서울시민대상 본상을 수상했지만 그에게는 불우노인들의 `효자', 장애인들에게는 `대부'라는 호칭이 더 어울린다.

자신의 사업에 쏟는 정성보다도 짙은 애정과 사랑을 음지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씨의 어린시절은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영화제작을 하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혹독한 가난 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밀린 수업료를 내지 못해 중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했고, 그후 껌팔이, 좀약장사, 액자장사 등 안해 본 것이 없었지만 항상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20세에 군복무를 시작한 오씨는 자신의 적성이 `요리'라는 것을 깨닫고 제대 후 곧장 음식장사에 뛰어들었다. 1987년 관악구 신림동에 불고기음식점을 냈다.

”불고기가 먹고 싶어 음식점을 기웃거리는 노인들이 늘 마음에 걸렸어요. 궁리 끝에 식당에서 무료식사를 대접했지요. 그후 신기하게도 사업도 번창했어요.“ 오씨가 이를 시작으로 불우노인들을 위해 마련한 경로잔치만도 50여차례에 이른다.

오씨는 사업차 방문했던 미국의 대도시 거리에서 정상인과 똑같이 활동하는 장애인들을 보곤 또 한번 쓰린 가슴을 달래야 했다.

한국의 장애인들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오씨는 98년부터 장애인 문예지 `솟대마을'에 제작비 전액을 지원하고 있고, `성나자로마을 돕기 후원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했다.

“돈을 벌고 나서 불우이웃을 돕겠다고 생각하면 절대 남을 도울 수가 없어요. 나눔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해질 수도 있어요” 오씨의 생활철학 겸 기업이념이다.

/고주희 기자 orwell@hk.co.kr

■장려상 강철호…장애인문고 운영

서울시민대상 장려상을 받게 된 강철호(姜哲鎬ㆍ60ㆍ서울 중랑구 망우동)씨의 집은 장애인복지센터나 다름없다.

강씨가 부인 한태순(韓泰順 ㆍ56)씨와 함께 자신의 집 2층에 장애인을 위한 `다솜의 집'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강씨는 요즘은 6명의 할머니를 새로 맞기 위해 `다솜의 집' 단장에 여념이 없다.

강씨가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큰아들 비오(32)씨가 1급 지체장애라는 멍에를 안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 비오를 10년 동안 통제가 심한 재활원 시설에 맡겨두고 늘 가슴이 아팠지요. 처지가 비슷한 벗들을 유독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장애인 친구 3명을 식구로 맞은 게 인연이 되었어요.”

강씨는 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무료 문고도 운영해 왔다. 93년 300권으로 시작한 `다솜문고'는 어느덧 10배 이상 늘었다.

“은행과 관공서를 돌며 책뿐 아니라 팸플릿까지 끌어모았다”는 그는 “책을 구하기 위해 7년 동안 생일선물도 도서상품권만 받았다”고 회고했다. 어렵게 구한 3,000여권의 책은 매달 첫째 주 수요일마다 장애인들의 독서모임인 `한마음독서회' 회원들에게 전해져 마음의 양식이 된다.

96년부터는 아예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사랑의 집' 경로식당 회장도 맡아 봉사요원과 함께 매일 홀로 사는 노인들의 무료입원, 통원치료, 무료이발, 목욕시키기 등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키운 장애인 3명은 모두 결혼해 임대아파트에 사는 등 어엿하게 독립했다. 강씨는 “이제는 노인들에게 편안한 울타리가 되어 그들과 더불어 여생을 마치는 게 소원”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장려상 반순자…40여년 한결같은 맹아사랑

“장애인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주위의 따뜻

한 관심 하나하나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줍니다.”

40여년 동안 고아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펴고 있는 반순자(泮淳子ㆍ57ㆍ여ㆍ사진)씨는 서울시민대상 장려상 수상의 영광을 한빛맹아원(서울 수유리) 아이들에게 돌렸다. 1964년부터 사랑을 실천해 왔던 이 곳에서 반씨는 `장애아들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다.

반씨가 시각장애인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부산의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내가 다니던 동네교회에 많은 맹인 신도가 있었어요. 그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함께 놀면서 그들의 진정한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당시의 맹아원 아이들은 지금 목사와 전도사, 교사가 되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반씨는 초창기 사회복지법인으로 인가를 얻지 못해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한빛맹아원에서 겨울이면 매서운 추위, 여름에는 찜통더위에 시달리면서 아이들과 고락을 같이 했다.

지난 86년 원장이 된 뒤 지금까지 연간 500여명의 자원봉사자를 데려오고 외국의 후원자와 결연을 맺는 등 시각장애아동들의 복지를 위해 헌신해 왔다.

지난 7월에는 정든 한빛맹아원을 후임자에게 물려주고 강원 양구군에 맹인전문 생활교육 시설인 `로뎀의 집'을 세우고 있다. 반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하지 않고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반씨의 장애인 사랑은 가족에게도 이어져 둘째딸 김의영(26)씨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 현재 구세군복지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고통받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지내며 이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을 주는 게 기쁨입니다.” 반씨는 “산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시련인 그들을 위해 아직도 할 일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장려상 박옥순…불우학생 장학금·水害 구호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더 많이 봉사하라는 격려로 생각하겠습니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한식당 `또순이네'을 운영하고 있는 박옥순(朴玉淳ㆍ45ㆍ여ㆍ사진)씨는 서울시민대상 장려상 수상 사실에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상 받으려고 한 일도 아닌데”라며 계면쩍어 했다.

전북 김제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박씨는 초등학교 졸업 후 상경해 환경미화원에서부터 식당 종업원까지 웬만한 궂은 일을 모두 해봤다. 박씨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다'는 생각에 고생들을 견딜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용산시장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시절 “시장주변을 맴도는 동생 같은 불우한 고아들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혼자 먹고 살기도 어려운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면서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불우한 이웃들을 반드시 돕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1970년 양평동의 갈비집에 종업원으로 취직하면서 안정을 찾은 박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인근 지역 건물의 화장실 청소를 시작으로 오전 7시부터 밤12시까지 식당 일에 매달렸다.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는 고달픈 일과 속에서 어깨 너머로 열심히 음식조리과 음식점 경영을 배웠고 월급을 꼬박꼬박 저축하면서 자립의지를 키웠다.

종업원을 시작한 지 22년만인 91년 마침내 자신의 식당을 갖게 된 박씨는 남다른 음식 솜씨와 경영 노하우로 기반을 잡았고 어려서부터 꿈꿔온 이웃돕기에 나섰다.

93년부터 양로원 `안나의 집' 할머니 10여명에게 쌀을 지원하는등 지역 노인들과 저소득 가정을 초대해 경로잔치를 벌였고 94년부터는 양강중학교의 불우학생 20명에게 매월 20만원씩 총 48회에 걸쳐 96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연천군의 수해 지역에 가스레인지 150대와 쌀 40포 등 2,176만원 상당의 구호물자를 제공했다. 이밖에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에 매달 3만원, 한국어린이재단에 매달 5만원씩 내고 있다.

“내 자신이 가난해서 배우지 못하고 고생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이런 고통이 없었으면 한다”면서 “여유가 생긴다면 고아원을 하나 세우고 고향에다 장학재단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