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이나 규모는 대단한데, 분위기는 어째 영….” 아시아ㆍ유럽정상회의(ASEMㆍ아셈) 관계자나 취재단이 보이는 공통적인 반응이다.아셈 개막식이 열린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영국 로이터통신 기자는 “처음에 와서는 시설에 감탄했지만 시간이 갈 수록 정감이 안가는 곳”이라며 “너무 긴장들 해서인지 경찰ㆍ행사요원은 물론, 시민들까지도 표정이 잔뜩 굳어있는 등 도무지 생동감이 없어 보인다”고 혹평했다.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셈 회의장 시설에 비해 경찰의 무분별한 경비와 행사 운영상의 미숙함이 시민은 물론, 모처럼 찾은 외국인들로부터 외면을 자초하고 있다.
삼성역 입구에서 만난 회사원 강모(33)씨는 “통제블록과 경찰이 번갈아 가면서 길을 막는 바람에 헛걸음하기가 일쑤”라며 “통제구역과 통행구역에 대한 안내판이라도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모(26ㆍ여)씨는 “좁은 통로에 경찰들이 무질서하게 앉아 있는데다 곤봉을 질질 끌고다니는 등의 모습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시민 박모(29)씨는 “철통 같은 경비 탓에 개미새끼 한마리 얼씬 거리지 않은 아셈회의장 주변이 황량하게만 느껴진다”며 “시민과 이토록 철저하게 유리된 국제행사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씁쓸해 했다.
경찰력이 집중된 컨벤션센터 주위는 말할 것도 없고 지하 코엑스몰에만 배치된 경찰은 모두 1,300여명. 한 외신기자는 “상가 곳곳에 진치고 앉아 있는 경찰의 커다란 몽둥이와 칙칙한 색깔의 제복이 너무 섬뜩하다”며 얼굴을 찌푸렸고, 또 다른 기자는 “경비에만 너무 신경을 쓴 탓인지 마치 외딴 섬에서 감시를 받으며 행사를 치르는 기분”이라고 불쾌해 했다.
회의ㆍ 전시장 규모와 통신망ㆍ컴퓨터 시설 등 우수한 하드웨어로 호평을 받았던 회의장 내에서도 운영 미숙 등 소프트웨어의 결함이 잇따라 지적됐다.
미디어센터의 경우 19일에 이어 20일에도 초대형 멀티비전을 통해 방영하는 개막식 등 장면에 번역자막이 안나오고 일부 브리핑에 통역서비스가 없어 외국기자들의 불평이 터져 나왔다. 코엑스 2층에서 열린 전통공예전은 홍보부족으로 썰렁하기까지 했다.
수습사무관 출신으로 이뤄진 도우미들도 경직된 분위기에 한 몫하고 있다. 한 프랑스기자는 “도움을 청하기 전까지는 아무 소리없이 서 있기만 한다”고 꼬집었다.
한 진행요원은 “행시 등 고시출신 수습사무관 130여명이 설명 한번씩 듣고 현장에 투입됐다”면서 “아무래도 전문 자원봉사자들 보다는 서비스질이 낮을 것”이라고 시인했다.
그래도 외형적인 규모만은 엄청나서 1조 2,000억원을 들여 지은 연면적 6만여평 규모의 코엑스 시설물 중 길이 320m에 달하는 유리벽과 11m 유리 피라미드, 6,000평의 컨벤션센터지붕이 기네스북에 오를 전망이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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